매일신문

특별기고-파괴된 낙원

9·11 테러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테러리즘이 최근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지난 주말 적도의 낙원 발리를 피로 물들인 이번 차량 폭탄 테러 사건은 피해 규모로 따져 역대 3위의 대형 참사다.

이번 폭탄테러로 9·11테러 이후 가장 많은 187명이 숨지고 300여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에 앞서 최근 몇 달 동안 쿠웨이트와 필리핀·인도네시아·파키스탄 등에서 미국 공관 또는 미군을 겨냥한 테러사건이 잇따라 터졌다.

지난 8일엔 쿠웨이트에 주둔 중인 미군 해병대가 무장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받아 한 명이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보다 이틀 전엔 프랑스 유조선 랭부르호가 예멘 연안에서 폭발해 침몰했다. 이밖에도 지난 2일 필리핀 민다나오섬에서 미군을 노린 폭탄 테러가 있었고 지난달 23일엔 자카르타의 미 대사관 근처에서 차량이 폭발하는 등 크고 작은 테러가 최근 잇따라 발생한 바 있다.

결국 인도네시아 발리 참사는 예고된 테러나 마찬가지다. 이번 테러는 사상자 전부가 다국적 민간인이라는 점에서 특정 국가나 군인·공무원 등을 겨냥하는 보통 테러에 비해 훨씬 잔혹하다.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완전히 붕괴된 건물이 참사를 말해주고 있다. 곳곳에 흩어져있는 시신들을 수습하는 데만 많은 시간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불에 타거나 훼손된 시신이 많아 더욱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법적 제재의 대상으로서 테러리즘의 핵심적 내용은 테러행위의 본질을 통해서 이루어 져야 한다. 그 목적과 배경에 대한 이해나 동정은 금물이다. 모든 테러리스트의 행동은 범죄이다.

이번 발리에서 발생한 테러와 마찬가지로 테러행위는 일반적으로 최대한의 사건성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테러행위는 즉각적인 물리적 피해보다는 이를 넘어서서 불특정 다수의 심리적 공포효과를 얻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결국 이번 테러행위는 그 피해자가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국가의 국민이라는 측면에서 그 실제적 공포효과의 대상을 전세계의 모든 국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범죄행위이다.

모두가 함께 무고한 사람을 줄이는 무차별적인 살상으로 어떠한 목적이나 뜻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생각과 맞서야 한다. 국제적인 테러리즘이 다시 문명사회에 무서운 교훈을 주고 있다. 테러리즘에 단호히 맞서는 국제사회의 연대가 다시 한번 강조되어야 할 때이다.

이미 9·11테러를 통해서 전세계가 21세기의 적, 테러에 맞서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바 있다. 이에 따라 대(對) 테러공조체제 강화를 주장해온 미국의 일방주의는 더욱 강력한 추진력을 갖게 되었다. 이는 테러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일 뿐이다.

테러 안전지역으로 여겨져 왔던 휴양지 발리에서 허를 찌르고 일어난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이제는 지구상의 그 어느 곳도 테러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늑대가 되는 자연상태로 회귀하고자 하는 것이 테러의 목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 방법을 가진 이념이나 종교는 그 자체로 '악'일 뿐이다.

최철영(대구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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