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란 빛이 넘치는 밝음 속으로 해방되는 시간이다. 하지만 자유와 한가로움이 주는 텅 빈 운동장 같은 공허함도 아울러 깃드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미묘한 느낌이 나를 떠나게 한다.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홀로 정처 없이 떠돌다 돌아오는 것이다. 삶은 계획하고 기대한 만큼의 실망과 혼란도 도사리고 있는 법. 그래서 '홀로, 훌쩍' 떠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다가올 내 삶의 예행 연습이기도 하다.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지만, 삶의 중요한 국면은 언제나 혼자 치러야 하고 죽을 때도 훌쩍, 혼자 가는 것 아닌가. 길은 흘러가다 내 멈춘 그곳에서 문득 사라진다. 길은 애초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평소 여유가 없어 새겨듣지 못했던 음악들과 외로움과 호기심이 방향 없는 길을 만들고 흘러서 어느 곳에 멈추었는지도 모른다. 표현 못해 맴돌던 내 느낌과 교묘하게 눈을 맞추는 등 굽은 층층나무 한 그루, 어둠 덮고 웅크리는 멀고먼 길, 또는 전생서 본 듯한 어떤 사람과의 스침이나 무수한 사연의 여관방 벽들.
오랜 시간 나를 기다렸다는 듯 그들은 그 시간과 공간에서 그들의 방식으로 나를 맞이한다. 단 한 번 스치는 것이기에 우리의 만남은 절실하고 애틋하다. 그 절실함은 때로 삶의 비의에 닿기도 하고 새로운 상징을 만들기도 한다.
숨기고 견줄 것이 없기에 내 삶의 상처와 쓸쓸함을 위로받기도 하고 또 미처 몰랐던 자신의 부끄러움과 우매함을 확인하기도 한다. 길 잃은 중이 하산하는 길을 묻자 "물을 따라 흘러가라(水流而去)"고 산사람이 말했다는 것을 어느 글에서 보았다.
삶의 지혜란 거창한 그 무엇은 아닌 것 같다. 자기의 시간을 물처럼 흐르게 하여 길을 만들기도 하고 찾아나가기도 하는 것 아닐까. 일상과 일상의 비움. 그 교차와 순환의 과정에서 나는 내가 몰랐던 길, 잃었던 길, 혹은 새로운 길을 발견하기도 하고 만들기도 하며 산다. 여행은 열심히 산 자에게 더 잘 살라고 신이 우리에게 선물한, 축복의 시간이다. 낯선 세계의 절실함이 나를 부르는 가을날 주말 오후다.
김영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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