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군이 비틀거려서야

현역 육군소장이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장관이 부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이런 지휘부에 충성하느니 차라리 전역하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다"는 폭탄 발언은 이유가 어디에 있든 20여일이 지난 지금 생각해봐도 그건 대단한충격이다. 아마도 우리 군(軍)역사상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사건으로 기록될만한 어록(語錄)이 아닐까 싶다.

더욱이 정보부대의 장(長)이 생명처럼 여겨야 할 군기밀인 '보고서'까지 TV카메라앞에서 흔들어보이며 "이 속에 진실이 있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외치는모습을 우리국민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며 봤을까.

▲忠誠하느니 전역하겠다니

우리 군(軍)의 현실을 가감(加減)없이 축약해 보여준 '공개된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그 장성은 20여명의 고귀한 우리해군장병이 사상한 지난 6월 '서해교전'이 있기전에 북의 도발징후를 당시 김동신 국방장관에게 보고했으나묵살됐고 결국 사후 진상조사에선 오히려 표적수사로 징계를 받게되자 자청해 전역하게 됐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이에대해 당시 김동신 장관은 "묵살한 적은 없고 그의 보고서가 여러갈래로 방향이 잡혀 누구나 알기쉽게 요약하라 했다"고 상반된 주장을 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중요한 사건이 그 장성의 반발성 전역결심과 장관교체로 유야무야됐다가 석달만에 국감장에서 다시 재론됐다는 점이다.

또 '장관묵살파동'에 대한 국방부의 조사도 양비론(兩非論)형식으로 결론을 맺고 결국 그 장성에겐 '보직해임'이란 징계가 내려지고잠잠해져 버렸다. 이게 이렇게 결말이 날 일인가도 짚고 넘어가야할 사안이지만 문제는 일개 사병이나 영관급(領官給)장교도 아닌현역 소장이 감히 장관에 항명하면서 이렇게 군기를 묵살해도 되느냐 하는점도 예삿일이 아니다

. 그의 주장이 백번 옳다쳐도 국감장에서 마저 막가는 식으로 나온건 이미 군기는 땅에 떨어질대로 떨어진 것이다. 장성이 이럴진대 그 이하 장교나 사병의군기는 새삼 들먹일 필요도 없을 정도로 엉망 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길이 없다. 설사 상관의 부당한 명령이라도 일단 복종 하는게 군율의 상식이고 이게 군이 유지돼온 근간이다. 이런점에서 그 장성의 항명성 발언은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 될수가 없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오죽했으면 육군소장이 국감장에서 그런 행태를 보였을까 하는 점이다. 그만큼 우리군의 최상층 지휘부엔갈등구조나 군인으로선 도저히 이해못할 뭔가가 있다는걸 이번사건은 명백하게 시사하고 있다. 그건 다름아닌 현정권의 햇볕정책과 괴리되는 군현실을 좁힐수 있는 '공통분모'를 좀처럼 찾지못한채 그냥 떠내려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군의 주적개념이 모호해 지면 훈련도 별 의미가 없고 군기도 자연 해이해지게 마련이다.

▲잇단 脫線…政治논리 배제해야

요즘 군기강문제가 부쩍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는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군의 이런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게 아닐까 싶다. 총기관리를 도대체 어떻게 하길래 상사가 은행강도를 하며 그 공범또한 같은 군인일 것이라는 수사진의 추정아래 수사를 압축해들어가고 있다. 심지어 민간인이 수도방위를 서는 초병의 총기를 탈취해 은행강도에 이용했다는 대목에선 말문이 막힌다.

북한 선박의 영해침범소식에도 아랑곳없이 지휘관들이 골프를 했다거나 심심찮게 불거지는 장성이나 고급 장교들의 성추문에다 장교부인들의탈선행각에까지….

게다가 수십억원의 공금을 횡령한 사건이 줄을 잇다가 복지기금까지 횡령해 아예 미국으로 도주한 케이스등 각종 비리도 심상찮다. 사병들이 먹는 고추 군납비리에까지 군인들이 연루되고 있다는 뉴스에다 맹물비행기 사건이라는 희안한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18년전 사병의 죽음을 놓고 자살이냐 타살이냐로 의문사위원회와 국방부간의 입씨름은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들의 가슴을 섬뜩하게 하고 있다.

이러니 구타문제와 맞물려 병무비리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60만대군'중에 극히 일부가 저지르는 행태이지만 군의 유기성 때문에 군 전체가 불신을 받고 지휘관들이 함께 몰매를 맞고 있는것이다.물론 과거엔 '안보'라는 이유로 어둠속에 묻혀있다가 개혁.개방시대에 접어들면서 밖으로 노출되기 때문인 탓도 있지만 분명 지금우리 군은 기강에 문제가 많다.

더 큰 문제는 이를 은폐하는게 능사가 아니라 가급적 공개하고 투명하게 보여줌으로써 문제를 줄여나가는 군개혁에 더욱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대전제는 지휘관의 사고에 "군은 군일뿐"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하고 그게 사병들에게 심어지도록 해야 한다. 정치논리가군에 오염되면 그건 군이 근원적으로 흔들리는 해악 요소임을 우리들은 '숱한 사건'으로 경험해 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어떤정책'이든 '군의 본질'을 훼손해선 안된다는 엄연한 구분이 있어야 하고 그 획정은 군통수권자가 명확하게 그어 줘야 한다. 그래야만 군이 참모습으로 굳건하게 거듭난다.

논설위원 박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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