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도대체 어느나라 사람이야?" 대구 외국인노동상담소 김경태(45) 소장은 이런 '욕'을 듣는 데 이골이 났다고 했다. 근무 업체는 물론 노동청·출입국관리사무소 등을 상대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다보니 그렇게 됐다는 것.
◇대구에 지원단체 10여개=하지만 김 소장은 그런 말을 들을 때 오히려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코리안드림을 갖고 건너 온 외국인들의 인권과 꿈을 지키는데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되고 있구나 싶기 때문.
이렇게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는 복지관·종교단체 등은 현재 대구에만 10여개 있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노동자가 증가하면서 이들을 위해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대구 거주 등록 외국인은 1만4천478명이다. 2년 전보다 3천명 정도 는 숫자. 중국인(3천925명) 인도네시아인(1천974명) 베트남인(1천687명) 대만인(1천316명) 필리핀인(1천134명) 등이 주류를 이룬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가정 같은 곳=대구에서 가장 먼저 외국인노동자 인권보호에 나섰던 곳은 가톨릭근로자회관(종로2가)이다. 1993년 한 성당으로 모여 미사를 드리던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글반을 운영한 것이 그 시작. 이 회관은 노동 상담, 행사 지원, 공동체 모임 주선 등의 활동을 하고 있고, 작년에 121건이었던 노동·인권 상담은 올들어 벌써 200건을 넘었다.
"체불 임금을 받아주거나 목돈을 만들어 줬을 때 외국인 노동자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말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낍니다". 이 회관에서 3년째 외국인 노동자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 김윤조(37) 과장은 "외국인들이 회관을 통해 한국생활에 안정을 찾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이 근무하는 공장에서 문제가 발생해 사건 처리를 위해 나섰다가 "당신이 뭐냐" "불법체류자를 위해 일하는 당신들도 불법집단 아니냐"는 등 힐난을 듣는 것은 정말 힘들다고 했다.
이 회관을 찾는 사람들의 국적은 베트남·방글라데시·중국 등 다양하지만, 70% 가량은 필리핀 노동자들이다. 이때문에 필리핀 노동자 모임인 '포와'(POWA), 필리핀 여성과 한국 남성이 결혼한 모임인 '코-필' 등 관련 자생 모임까지 생겨나 이 회관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도 개선 요구하는 구조대=1996년 문을 연 대구 외국인 노동상담소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고향 같은 곳. 그들의 노동 여건 및 인권 상황의 심각성을 사회에 고발하고 그들을 보호하는 데 주목적을 둔 때문이다.
매년 2천, 3천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상담·휴식·의료서비스 등을 얻기 위해 이 상담소를 찾는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휴식처인 '쉼터'를 운영해 하루 10∼50명에게 임시 거처를 제공하고, 매년 2차례 정도 축제와 수련회를 열어 타향살이를 위로해 주고 있다. 올들어 5월까지 상담건수만도 500여건. 체불임금 등을 해결한 금전 문제도 1억5천만원에 이른다.
김경태 소장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가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절반 정도가 임금체불, 폭행, 산재 등으로 피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불법체류자나 산업연수생이어서 강제출국·보복에 대한 불안감과 수치심 때문에 하소연도 못하고 속앓이만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김 소장은 그러나 불법체류자 양산, 임금체불, 폭행, 산재 피해 등도 자세히 보면 잘못된 제도때문에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일부 악덕 사업주의 횡포에 그치는 게 아니라 최근엔 정부마저 이들의 존재를 인정치 않고 추방하려 한다는 것. 그래서 제도 개선에 못잖은 힘을 쏟기로 하고, 지난달에만 7번의 집회를 열었다고 했다.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 산업연수생 제도를 폐지하고 고용허가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 타향만리 이국땅에 온 손님들을 노예·범죄자 취급해 쫓아내선 안됩니다.
내국인들이 기피하는 3D현장에서 묵묵히 일을 하는 이들도 엄연한 우리의 산업 역군들입니다".그래서 김 소장은 오늘도 노동청, 출입국관리소, 사업장, 변호사 사무실, 집회장소 등을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다.
◇한국생활을 돕는 복지관들=3공단 인근 제일종합사회복지관은 대구에선 처음, 전국에선 두번째로 '함누리 외국인노동자 도움센터'를 작년 초 설치,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센터 이석형(31) 사회복지사는 "공단이나 시내를 그냥 배회하며 시간을 보내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국문화를 배우면서 복지서비스를 받을 기회를 제공하려고 삼성복지재단 도움으로 센터를 만들게 됐다"고 했다.
현재 등록자는 130여명. 이들은 이곳에서 한글과 컴퓨터를 배우고 병의원 의료서비스도 지원받는다. 기독의사회 회원 10여명이 무료 또는 실비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적잖은 시민들이 물심양면으로 센터를 돕고 있다. 덕분에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들도 많이 찾고 있다는 것.
"주당 한두 차례 외국인 노동자 가정을 방문, 생활 상황을 묻고 전기세 납부 등 작은 문제라도 도와주려 합니다. 그러나 법적인 것 등 어려운 일이 닥쳐 도움을 주지 못할땐 답답하고 힘이 듭니다". 이 복지사에겐 최근 또다른 고민이 생겼다고 했다.
일부 주 5일 근무제 실시 이후 외국인노동자들의 근로 강도가 더욱 높아져 센터를 찾는 외국인이 갈수록 줄고 있는 것.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언제라도 필요할 때 찾아오면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센터 문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트럼프, 중동상황으로 조기 귀국"…한미정상회담 불발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