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라크 UN결의 수용 안팎

이라크가 유엔안보리 결의를 무조건 수용키로 한 것은 전쟁의 1차 고비를 넘길 수 있는 선택이라는 점에서 긍정적 의미를 둘 수 있다.유엔결의 수용 외에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담 후세인 대통령으로선 최소한의 체면을 지키면서 급한 불을 일단 끄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이라크는 유엔안보리가 설정한 시한을 이틀이나 앞두고 결의를 수용함으로써 종전의 벼랑끝 버티기 전술을 버리고 훨씬 유연한 자세를 과시했다.

이라크는 또 오는 18일 유엔 사찰단 선발대의 입국을 시작으로 대량살상무기 보유 실태를 보고해야 하는 12월 5일까지 적어도 한달의 시간을 벌어놨다.정권 안보와 직결되는 정권의 존엄성과 체면을 지키려는 노력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지난 9, 10일 열린 아랍연맹 외무장관 회의는 이라크의 주권과 영토적 통합성을 강조했고, 이라크에 대해선 유엔 결의를 수용하는 것이 전쟁위기를 막는 길이라고 권고했다.

아랍연맹은 이라크의 체면을 지키면서 외교적 압박을 가해 이라크로부터 긍정적 언질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아랍권 유일의 유엔안보리 이사국으로 대이라크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시리아의 설득이 주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시리아는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 배제를 보장받고 결의안에찬성했다고 이라크측에 해명했다.

아랍국 외무장관들의 입에서 이라크의 유엔결의 수용 방침이 흘러나왔지만 이라크 지도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그 후 열린 이라크 의회 긴급 회의는 한바탕의 정치 쇼를 방불케 했다. 명목상의 입법기구인 의회는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유엔안보리 결의의 부당성을강력히 비난하고 이를 거부하도록 지도부에 권고했다. 특히 의회는 국가와 국민을 전쟁의 위협에서 구해낼 수 있는 결정을 '현명한' 지도부에 위임했다.

후세인 대통령은 의회를 앞세워 대내외 선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그는 의회가 유엔결의 거부를 만장일치로 권고한 뒤 고도의 심리전술을 구사했다.

전세계의 이목이 후세인 대통령에게 집중됐고, 그의 침묵은 곧 고뇌의 깊이로 해석됐다. 그는 내부의 강경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와 중동지역을 전쟁의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자신에게 위임된 현명한 결정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게됐다.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각본이었지만 후세인 대통령은 유엔 결의 수용에 앞서 극적 효과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는 자신이유엔결의 수용을 직접 발표하지 않고 나지 사브리 외무장관을 통해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에게 공식 입장을 전달했다.

그러나 이라크의 유엔결의 수용이 원만한 사찰로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이라크는 의혹의 초점인 대량살상무기 관련 시설과 대통령궁에 대한 사찰 과정에서 특유의 시간 끌기와 연막 전술로 활동을 방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우려한다. 따라서 이라크의 유엔결의 수용은 본격적인 대결로 향하는 과정일 뿐이라고 이들은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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