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이 한 장도 남지 않고 깡그리 떨어져 버린 발가벗은 감나무나 사과나무 꼭대기에 두세개씩 달려있는 빨간 열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문득 기존의 복잡한 인간관계를 말끔히 정리해 저 겨울의 과수(果樹)에 남은 까치밥 같은 인간관계 두셋만 남겨두고 싶은 생각이 마치 반역을 꿈꾸는 자의 몽상처럼 피어오를 때가 있다.
까치밥으로 남은 빨간 열매. 날짐승의 먹이로 남겨둔 그것은 이해관계를 초월한 농심(農心)에서 우러난 연민의 극명한 상징이다. 과연 나를 둘러싼 인간관계의 본질에는 몇 개의 까치밥이 달려 있을까? 나는 가슴부터 쓸어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연민에 빠지기 쉬운 나의 인간성이 타인에게 '이윤추구의 도구'로 악용된 경우는 얼마나 많으며, 내가 그런 경우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내가 만나왔던'세상 걱정에 앞장서온 사람들' 중에 연대를 중시하는 아름다운 인간성을 '운동조직의 도구'로 취급한 경우는 얼마나 많으며, 그것을 자기 영혼의 쓰라린 상처로 간직한 사람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인간성을 이윤추구의 도구로 취급하는 경우와 인간성을 운동조직의 도구로 취급하는 경우를 서로 견주어 보면 어느쪽이 더 반인간적인 것일까?
발가벗은 감나무를 다 늙어서 현실적으로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에 비유해 보자. 그는 외로울 것이다. 화려한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다면 그만큼 더 고독의 고통이 무거워질 것이고, 화려한 과거가 때론 형벌로 둔갑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한 날들을 보내는 그의 눈에 문득 자신의 가슴에 까치밥처럼 남은 관계들이 발견될 수 있다면, 틀림없이 그는 어머니의 품에 안기는 듯한 위안을 맛보게될 것이며, 더 나아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대오각성의 찰나까지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겨울의 문턱에서, 단 한번은 기존의 인간관계를 탁탁 털고 나목의 과수처럼 버텨 서서 나에겐 몇 개의 까치밥이 남게 되는가를 확인하고 싶다. 허무주의를 경계하기 위해서도 지금쯤 꼭 거쳐야하는 과정이리라.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李대통령, 대북전단 살포 예방·사후처벌 대책 지시
대통령실 "국민추천제, 7만4천건 접수"…장·차관 추천 오늘 마감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