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윤주태 논설위원-'철새'캉드쉬

엊그제 12월3일은 우리에게 잊혀질 수 없는 날이다. 5년전, 국제 금융시장에는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는데도 우리는 '동아시아의 기적'이라는 달콤한 잔치판에 눈이 어두워 'IMF 관리체제'가 이 땅을 침범하는 것을 보고 있어야만 했다. 이 경제 점령군이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한국정부와 IMF가 국민이 보는 앞에서 서명한 날이 바로 그 날이다.

IMF는 가공할만한 변화를 가져왔다. 구조조정·세계화·모럴 해저드· 패러다임 같은 생소한 단어들을 거의 일상 용어로 정착시켜 놓았다. 그리고 IMF를 졸업했다. 그러나 광복절은 기억하고 국치일은 쉬 잊혀지듯 12월 3일은 또 그렇게 우리의 뇌리에서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잊혀지는 가운데에 불현 듯 솟아오르는 단어가 바로 '캉드쉬'다.

바로 그날 밤, 당시 임창열 경제부총리와 나란히 앉아 IMF 프로그램에 서명한 사람이다. IMF총재라는 공식적인 직함에 앞서 날카로운 외모와 마치 점령군 사령관같은 태도, 거기에다 우리에게 낯선 불란서 이름까지 덧붙여져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던 그 위인이다. 5년이 지난 지금 IMF가 던져준 많은 선물(?) 가운데 유독 캉드쉬가 떠오르는 것은 최근 그의 행보가 특이하기 때문이다.

97년 10월, 캉드쉬 총재는 '한국경제는 펀더멘털이 튼튼하므로 외환위기 가능성이 없다'고 했으나 한달만에 외환위기가 닥쳤다. 그러자 그는 '아시아 정부들이 거시경제 및 금융정책에 중대한 실패를 저질렀다'고 비난하면서 재정긴축과 살인적 고금리 정책을 강요했다.

당시 아시아에는 시장 교란 요인이 심각한 상황인데 IMF가 지원국에 대한 전문 지식도 없이 거시 경제를 너무 심하게 흔드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 지금은 거의 정설로 돼있다. 그러나 IMF의 대변자이자 워싱턴 컨센서스(總意)의 충실한 포교자인 그가 이를 알 리가 없다. 아니 한국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지막지한 강압 정책에 시달린 한국은 이듬해 IMF와 담판이 이루어지면서 강요 정책은 다소 수그러든다. IMF로서는 자존심을 꺾어가며 이를 시혜(施惠)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의 운명은 여기서 또 갈라진다. 이 순간이 우리가 IMF를 우등으로 졸업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스티글리츠 교수는 '한국은 IMF의 명령을 거슬렀기 때문에 IMF를 일찍 졸업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IMF 명령을 충실히 이행한 태국·말레이시아 등과 비교할 때 이것은 사실임이 입증됐다.

그만큼 IMF는 한국을 몰랐던 것이다. 어쨌든 2000년2월 방콕 유엔무역개발회의에 참석한 캉드쉬는 자유무역과 세계화에 반대하는 민간단체 회원으로부터 크림파이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한국에서는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성급하게도 올 2월 정부는 캉드쉬에게 '한국의 외환위기 극복에 도움을 준 공로'로 훈장을 준다. 더 심하게 다룰 수도 있었는데 약하게 주물러줬다고 훈장을 주는 것인지 알쏭달쏭하지만 사실이다.

그런 그가 총재를 물러난 뒤 프랑스 정부산하 기구인 국제경제전망센터 회장에 선임되더니 최근에는 민간단체인 '주빌리 2000'의 고문으로 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주빌리 2000'이 어떤 곳인가. 가톨릭에서 50년마다 행하는 대사면(大赦免) 행사인 주빌리처럼 약소국 부채도 당연히 사면해야한다고 주창하는 국제 단체가 아닌가.

말하자면 IMF와는 이념의 스펙트럼에서 완전한 대척점에 위치한 반세계화기구다. 정치적으로는 '철새'에 비유될 캉드쉬의 역(逆)행보가 사뭇 궁금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선진국 경제 논리 전파에 앞장서 온 그가 무슨 연유로 약소국 빚탕감 운동에 관여하게 됐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최근 IMF의 세력 약화에 대한 반사적 행동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지금 IMF는 5년전에 비해 목소리가 크게 낮아졌다. 남미에서는 구제금융을 주지않으면 국가를 파산시키겠다고 역공(逆攻)하고 있고 금융부채는 아예 갚을수 없다고 어름장을 놓기도 한다. 약소국 부채는 선진국들 '돈놀이'의 결과이므로 쌍방이 같이 책임져야한다는 여론이 거세게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캉드쉬의 '철새'행동을 탓할 수는 없다. 캉드쉬는 이렇게 새로운 시류(時流)를 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IMF 5년' 공과(功過) 논쟁에 젖어있다. 또 다른 패러다임이 전개되고 있는데도 우리 눈에는 아직 보이지 않는것은 아닐까. 무엇이 캉드쉬를 움직였는지 이번 주말에는 그에게 전자우편이라도 보내 시원한 답변을 듣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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