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의도 통신-정치인의 말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후보는 후보가 되기 전 공, 사석에서 기자들과 만날때면 대화 스타일이 달랐다. 이 후보는 가급적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농담을 하더라도 한마디 툭 던지는 식이었고 정치적 사안의 질문을 받을때면 강한 의지를 엿보게 하는 말을 즐겨 썼다.

정내는 이야기를 할 때도 말이 길지가 않아 인간적인 매력을 아쉬워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한나라당 지역 중진 의원은 "거대 야당의 확고한 리더가 된데는 짧고 단호한 말도 한 몫을 했을 것"이란 평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 후보는 정치적 소신이나 개인의 심정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면 설명을 길게 덧붙이는 스타일이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경선에 나서기 전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서 "왜 대통령이 되려느냐"는 질문에 노 후보는 여타 주자들과 달리 장황한 대답을 했다.

"국가와 민족에게 봉사하기 위해서라는 대답만으로는 아무래도 솔직하지 못한 것 같다"며 듣기에 따라서는 구설에 휘말릴 소지가 있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물론 결론은 '국가에의 봉사'였지만 '정직한' 대답을 위한 설명을 길게 붙였다. 노 후보를 공, 사석에서 만날때면 언제나 "지나치게 솔직하려고 하는 것은 자칫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가 있다"는 인상을 지울수가 없었다.

김만제 의원이 정책위의장 시절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측근은 "김 의원이 어떤 돌출행동을 할지 몰라 조마조마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경제분야는 물론 정치적 사안에 있어 거침없이 말하는 김 의원의 대화 스타일 때문이었다. 당 지도부의 정치적 판단을 거침없이 비판하는가 하면 민감한 사안에도 자신의 판단을 당당하게 말하곤 했다.

그통에 적잖은 당내 의원들로부터 "잘난 체 한다, 너무 막 가는게 아니냐"는 눈총을 받기도 했고 지금은 행정수도 이전공약과 관련 곤욕을 치르고 있지만 어쨌든 김 의원은 시쳇말로 "요즘 보기드문" 소신파다.

최근 대선 과정에서 소속 정당을 옮긴 의원들의 신상발언을 들어보면 대부분 "나라의 장래를 고심한 결단"임을 강조하고 있다. 나라의 장래를 생각할 때 특정 후보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 따른 구국적 행동이라고 할 뿐 어느 누구도 자신의 정치적 앞날과 관련된 선택임을 밝히는 이는 없다. 어떤 이는 자신의 말바꾸기는 감춘 채 경쟁상대의 말 바꾸기를 비판하기도 하고 자신의 정치적 오늘을 키워준 모태 정당을 가혹하게 몰아붙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듣고 믿는 이는 드물다. 의원들은 물론 여의도에 출입하는 기자 대부분은 "자신의 앞날을 생각한 변신"으로 본다. 같은 당을 하게 된 의원중에도 "변절자"라는 용어를 쓰는 이가 있고 적잖은 의원들이 하루만에 말을 바꾼 행동에 못마땅한 심정을 감추지 않는다. 그래서 선거철이 되면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여의도는 철새, 연어와 박쥐의 터전"이라는 슬픈 말이 나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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