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버스투어를 하고나서

오랜만에 그림으로 '포식'했다.사실 1년에 화랑에 가 볼 시간이 얼마나 될까. 애면글면 살면서도, 화랑에 한번 갈 여유 없는 것이 요즘 주부들이다.큰 맘 먹고 12일 대구시내 화랑을 순회하는 버스를 탔다. 대구화랑협회가 무료로 운영하는 셔틀버스다. 첫 날이어서 그런지 한산하다. 관계자 몇 명과 9살 딸을 데리고 나온 주부가 전부였다.

버스를 타기 전 봉산동 송아당화랑에 들렀다. 장은순씨의 개인전. 화랑에 들어서자 꽃 향기가 '진동'한다. 유화로 그려진 꽃 정물화.철쭉, 해바라기, 카라, 유채꽃, 연꽃, 장미…. 온통 꽃밭이다.

그 다음 들른 곳이 맥향화랑이다. 들어서자 움찔해진다. 꽃밭가에서 시체를 만난 것 같다면 과장일까. 허양구씨의 작품은 퇴색된 캔버스에 목탄으로 그려진 현대인의 초상 그림이다. 무표정한 얼굴에 초점없는 눈동자, 약간 벌려진 입술이 갈 곳 몰라 헤매는 우리들의 서글픈 영혼을 보는 것 같다.

함께 전시된 김기수씨의 작품도 그런 느낌이다. 차가운 거울에 그려진 앙상한 나뭇가지와 둘둘 말아 묶여진 상자들, 그 속에서 삐죽이나온 사람의 손. 화랑을 나서 맞는 찬 겨울 바람이 더욱 차게 느껴졌다.

작가가 함부로 내건 작품이 있을까. 그 깊은 뜻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하는게 안타깝다. 그림을 보는 중 누구는 그랬다. "그냥 보는 이의 느낌대로 보는 거지". 버스는 시내를 나와 대구MBC의 갤러리 M으로 향했다.

이날 축제 개막식 행사장이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깔끔하고 작은 봉산동 화랑들 보다 갤러리M은 규모가 크다. 북적대는 사람들을 보니까 축제같은 맛이 났다.

셔틀버스는 다시 봉산동으로 향했다. 동원화랑, 수화랑, 신미화랑, 석갤러리 등을 들렀다. 화랑마다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돼 특색있는 분위기였다.마지막에 들른 석갤러리의 차규선씨 작품전은 인상적이었다.

캔버스에 흰 물감을 뿌려놓고, 긁어 그린 작품들이 분청사기의 맛을 느끼게 했다. 김정희의 '세한도'같은 느낌의 '풍경'이란 작품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반나절만에 100점도 넘는 작품을 감상했다.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문화적 포만감이었다. 한 두 작품쯤 거실에 걸어놓고 오랫동안 감상했으면…. 빈 손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지만, 눈으로, 가슴으로 본 그림들이 내내 남아 뿌듯했다. 18일까지 축제가 열리니 쇼핑나오거나, 아니면 자녀들의 손을 잡고,가벼운 마음으로 '그림 잔치'를 즐겼으면 좋겠다.

백은영〈주부〉bey68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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