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불법 주.정차-실종된 단속의지

미국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엔 많은 사람들로 붐비지만 불법주차는 거의 없다. 주차단속만 전문으로 하는 교통경찰관이 조밀하게 배치돼 주차는커녕 정차 기미만 보여도 달려가 스티커를 끊기 때문. 견인을 예고하는 'Tow Away Zone' 표지판이 곳곳에 설치돼 있고, 러시아워 때만 주차를 금하는 구간에는 'Towing Hour' 표지가 서 있다. 남의 집 앞 주차도 즉시 견인 대상.

대구의 자매도시인 일본 히로시마에서는 경찰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했다. 10여년 전 '주차 대책과'를 신설한 뒤 과태료를 2배로 올리고 상습 위반지역엔 견인차를 상시 대기시키는 등 연중 단속에 나선 것. 거기서도 시민 반발이 없잖았지만 경찰은 무려 5년간이나 한결같이 단속했다. 현지 기관.기업들도 이에 발맞춰 직원들에게 버스 등의 정기권 요금을 부담해 줬고 시는 역.지하철역.터미널 등에 환승주차장을 집중적으로 만들어 대중교통수단 이용을 지원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대구시의 단속은 갈수록 뒷걸음질치고 있다. 1998년 46만5천720건에 달했던 불법주차 단속 실적이 올해는 29만1천여건으로 되레 감소했다. 견인 건수도 1998년 11만4천여건에서 8만5천여건으로 떨어졌다. 1995년 6개이던 민간 견인업체 역시 7년이 지나도록 겨우 1개만 늘렸다. 이들이 갖춘 견인차는 불과 43대.

주차단속 전담공무원은 중구 39명, 서구 19명, 북구 17명, 동구 14명, 남구 13명에 불과하다. 인구가 많은 달서구는 7명, 수성구는 11명밖에 없다. 공무원수 감축 후 단속 인력이 줄자 행자부 방침에 따라 대구시도 작년 9월 1천여명의 소방공무원과 1천300여명의 구군청 공무원에게 단속권을 부여했지만 지금까지의 단속 실적은 소방공무원 333건이 전부이다.

시나 구청은 이미 끊은 스티커의 과태료 징수조차 나몰라라 하고 있다. 때문에 최근 5년간 시내 체납이 무려 108만425건 420억8천818만원에 달한다. 연도별 체납액은 1998년 48억9천631만원에서 올해는 벌써 77억4천만원으로 폭증했다. 전문가들은 미납할 경우 가산금을 물리고 압류.견인하는 등 선진국형 강제징수가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준법의식마저 문란케 됐다고 질타했다.

구청들은 심지어 개별 건물의 의무 주차장 문제 단속에까지 손을 놓고 있다. 남구청 관계자는 "불법 용도변경이 많은 줄 알지만 담당 공무원이 4명밖에 없어 6천여개에 이르는 의무 주차장을 다 점검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1년에 두번씩 전체의 10%만 골라 점검한다고 했다. 북구청 지역교통과 관계자도 "의무 주차장만 제대로 지켜져도 주차난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지만 단속 인력이 없어 그대로 놔 두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에 따르면 올해 단속한 의무 주차장 불법 용도변경은 다 해야 42건. 1999년 360건, 2001년 120건보다 더 줄었다.

대구시는 시민 세금으로 만들어진 차도에 금을 그어 노상주차 요금을 받으면서도 돈만 챙길 뿐 그 반대편 차로가 불법주차로 엉망이 돼도 구경만 하고 있다. 돈을 받으려면 소통이라도 책임져야 할 것이지만 돈이나 챙길 뿐 나머지는 나몰라라 하는 것이다.

인도 위의 불법 주차도 마찬가지. 인도는 사람 체중만 지탱하면 되도록 기초가 간단히 처리됨으로써 최소 1t이 넘는 차들이 올라서면 노면이 망가진다. 그때문에 비가 오면 질척거리게 돼 시민들의 옷을 버려놓는 것은 물론 보수에만도 매년 엄청난 시민 재산이 낭비되고 있다. 그런데도 시민의 재산을 맡아 관리할 의무를 진 시.구청은 남의 일 보듯 하고 있는 중이다.

대구시는 버스전용차로를 강조해 시가지 25개 구간 100km 길이에 설치한데 이어 앞으로도 늘려나갈 방침이지만 위반 단속은 소홀히 하고 있다. 북구청의 경우 3년째 태전동 매천고가교 구간만 단속해 연간 총 단속실적이 10건에도 못미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시.구청이 자기 정체성조차 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민의 안전과 편안한 도시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가장 기본되는 소임인데도 그보다는 종사 공무원들의 편의를 더 우선해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차단속 공무원들은 "1995년 구청장에게 견인업체 선정권이 주어진 뒤 구청장들이 관심을 끊었다"고 했다. 가든호텔 부근에서 만난 한 환경미화원은 "인도 위 불법 주차를 구청이 잘 알고도 단속 않는다"고 했다. 민원이 생겨서는 선거때 표가 떨어지고 골치만 아프니 도시야 엉망이 되든말든 내 이익이나 챙기자는 심산이라고 시민들은 개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제도가 보강돼야 주차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떠밀고 있는 것이다.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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