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반DJ' 결속력 상실 "후폭풍' 예고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당선이 대구·경북 정치권에 예측할수 없는 '후폭풍'을 몰고 올 것으로 보여진다.

지난 5년 동안 '반 DJ 정서'를 대변해오며 지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지난 97년 대선에 이어 또다시 낙선함에 당장 TK 정치권은 정치적 구심점을 상실하게 됐다.

여기에다 지난 30년간 TK정서의 한 축을 형성해왔던 DJ가 사라지고 영남 출신 노무현 대통령 시대가 개막됨에 따라 지역 정서도 상당 부분 변화될 것으로 보여진다.

즉 대선에서 낙선한 이 후보가 대권 재수에 나서 TK 정서를 또다시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맡았던 지난 97년 대통령 선거 직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정치적 진공 상태를 맞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따라서 반 DJ 정서를 등에 업고 지난 6·13 지방선거와 2000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일색으로 채워진 지역 정치권은 심리적 상실감에 따른 위축은 물론 현실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상당수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번 대선을 앞두고 "이 후보 당선만이 지역 정치권이 중앙 정치권에서 살아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으며 만약 이 후보가 또다시 낙선한다면 TK는 정치력 영향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며 입을 모아왔다.

실제 대구·경북은 지난 16대 총선에서 김윤환·박철언 전 의원 등 한동안 지역을 대표했던 정치인들이 탈락한 뒤 27개 전 지역구에서 한나라당 출신 의원들이 당선됐으나 'TK'라는 지역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하나의 세력권을 형성하지는 못했다. 대신 허술한 정치적 결속력을 반 DJ정서를 대신한 이 후보의 우산 아래에서 지탱해 왔다.

결국 향후 급변할 정치적 상황 아래에서 자칫 지역 정치권은 방향타를 잃고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즉 민주당의 재창당이나 이 후보 은퇴 이후의 한나라당의 내부 분열 등 중앙 정치권의 미묘한 변화에도 지역 정치권은 상당한 충격을 받을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정치환경의 변화는 또 1년여 앞으로 다가온 2004년 총선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 지금까지 지역민이 보여왔던 묻지마 방식의 한나라 지지 투표 성향도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어 '세대 교체'나 '인물 교체론'이 대두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즉 지역 표심을 움직이던 반 DJ 정서가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인물'이나 '정치 개혁'을 바라는 목소리가 담겨질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한나라당 위주의 대구·경북 정치권을 향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정서적 고리나 중심 인물을 당장 기대하기는 힘들 것으로 예측된다. 그동안 지역 대표 정치인으로 꼽혀왔던 강재섭·박근혜 의원의 향후 행보도 이 후보 낙선으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차차기 대권 도전을 선언하며 TK 리더를 자임해왔던 강 의원의 경우 이 후보의 낙선이라는 상황에서 평소 불협화음을 빚어왔던 한나라당 지역 의원들을 묶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박 의원은 한나라당 탈당과 복당을 오가며 지역적 기반을 상당 부분 상실한 상태다.

여기에다 보수적인 지역 정서가 진보적 색채를 지닌 민주당 노 당선자의 노선에 쉽사리 동조 현상을 보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지역 의원들의 성향도 친 노무현쪽으로 기울기는 힘들 전망이다. 대구·경북 정치권이 30년 TK정권의 맥이 끊어졌던 지난 92년 대선 이후 또한차례 위기를 맞게 된 셈이다.

이재협기자 ljh2000@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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