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성탄절 추억이 떠오른다. 그 시절, 성탄 전야제는 온 마을의 잔치였다. 평소에는 교회를 시큰둥하게 생각하시던 동네 어르신들도 이날만큼은 주일학교에 다니는 손자, 손녀의 재롱을 볼 참으로 일찍부터 예배당 앞자리를 차지하셨다.
극장은 고사하고 TV 하나 없었던 시골 마을에서 성탄전야제는 그야말로 볼거리가 넘치는 초호화 버라이어티 쇼였던 것이다. 전야제가 끝나면 교회 안에서는 청년들과 학생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이른바 '올나이트'가 시작된다. 작은 선물들을 마련해서 서로 나누고 밤새 재미있는 게임들을 즐겼다.
성탄의 새벽이 오면 교회 종탑에서는 잠자는 세상을 깨우는 탄일종이 울리고, 우리는 마치 양 틈에 끼여 자다가 천사로부터 구세주가 나셨다는 소식을 들었던 이스라엘의 목동들처럼 벌떡 일어나서 '새벽송'길을 나섰다.
캄캄한 새벽녘에 하얗게 쌓인 눈길을 밟으며 걷던 일, 환하게 불을 밝혀둔 성도들의 사립문 앞에서 힘차게 성탄성구를 외치던 일, 면사무소와 파출소에서 당직을 서는 분들까지 성탄의 새벽을 함께 나누었던 일들은 이제는 아련한 옛 추억이 되고 말았다.
새벽송을 끝내고 교회로 돌아오면, 졸린 눈을 비비면서 교인들이 정성껏 자루 속에 넣어주었던 과자봉지들을 챙겼다. 열 한시의 성탄절 예배가 끝나면 우리는 챙겨두었던 과자봉지를 들고 교회 근처에 있는 재활원으로 향했다.
성탄절 전야제도 좋았고, 올나이트와 새벽송의 즐거움도 컸지만, 어린 마음에 성탄절의 감동을 진하게 새겨 준 것은 재활원의 아이들과 성탄절 오후 시간을 함께 보내던 일이었다. 그들과 함께 예배드릴 때에 들려주시던 목사님의 성탄절 메시지는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아기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눈먼 사람이 보고,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시기 위함입니다!".
언제부턴가 성탄절은 도심의 술집이 한 대목을 보는 날로 변했고, 우스꽝스러운 캐럴을 부르는 '엽기 캐럴 데이'나, 흰눈을 기다리는 '화이트 스노우 데이', 기업들이 상술로 이벤트를 벌이는 '대박데이'로 변질되었다.
이번 크리스마스만큼은 세상도, 교회도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든 이웃을 돌아볼 줄 아는 진정한 크리스마스로 회복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빌어본다.
김대진 기독교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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