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눈오면 휴일 설날도 산에서

겨울철만 되면 영산(靈山)에 홀로 올라 산천을 한 눈에 내려다보며 산불을 감시하고 안녕을 기원하는 '대암산(大巖山) 산신령' 정경수(53.초계면 유하리)씨. 한평 남짓한 감시초소에서 매서운 겨울바람을 피하며 합천의 중심부를 지키기 위해 눈길은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다.

감시원 생활 13년째. 멀리 산골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만 봐도 쓰레기.논두렁을 태우는 것인지, 산불인지를 족집게처럼 분별하는 베테랑이다.정씨는 매년 12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6개월간을 격일제로 대암산(해발 591m)에 올라 일몰때까지 근무하며 월 75만원을 받는다.

임도개설로 지금은 오토바이로 오르지만 지난해까지는 약 2시간 거리를 걸어서 올랐다.살림살이는 달랑 도시락과 간식, 망원경, 무전기가 전부다.

감시에 소홀할까봐 라디오조차 금물. 도로개설 후 산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혼자사는 산지기의 적적함을 달래주기도 한다.산불 감시원의 생활은 휴일도 명절도 따로 없다.

비나 눈이 와서 산불발생의 위험요소가 없을 때가 정씨가 쉬는 날이다. 함께 교대 근무하는 사람이 집안의 장남이고 정씨는 차남이라는 이유로 12년간의 설날을 대암산 정상에서 보냈다.그러나 "지역의 영산에 올라 고향 향해 절하는 것도 뜻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예부터 이 산은 가뭄이 들면 '강철이를 쫓는다'며 기우제를 지내고, 새해엔 주민.향우들이 찾아 안녕을 기원하며 산신제를 올리는 곳이기도 하다.그는 "지난 93년 합천읍 법정리에서 일어난 산불로 나흘 밤낮 수백ha의 산림이 훼손되는 것을 대암산에서 바라만 보고 있었던 때 가장 가슴아팠다"고 말했다.

"잠깐의 부주의가 엄청난 재난으로 변하는 산불을 막기 위해선 항상 조심하고 절대 방심해서는 안된다"며 13년 산불감시원답게 말한다.대암산은 위치상 합천의 중심부에 위치해 합천읍, 율곡.대양.초계.적중.용주면 등 다른 초소에 비해 감시영역이 매우 넓다.자신의 신고로 산불이 확산될 것을 초기진압 했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정씨. 건강이 허락되는 한 "산신령으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합천.정광효기자 khje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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