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화해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실화소재 영화 '스트레이트 스토리'. 73세의 앨빈 스트레이트는 언어장애를 가진 딸과 단둘이 살아간다.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진 그는 자신의 노쇠함을 새삼 깨닫는다. 그때 13년간 서로 소식끊고 살았던 형이 중풍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일생일대의 결심을 한다.

차도, 면허증도 없고, 보행기에 의지해야 하지만 의사의 수술권유마저 뿌리친 채 먼 길을 떠난다. 아이오와 주에서 위스콘신 주까지 300km. 가난한 그가 타고 가는 것은 30년이 넘은 낡은 잔디깎이 기계. 시속 5마일의 느림보 속도로 끝없는 평원과 이름모를 도시들을 지나간다.

긴 여정 속에서 마주친 가출소녀에겐 가족의 소중함을, 혈기왕성한 사이클 선수들에겐 젊은 날의 아름다움을 들려준다. 사슴을 치어 죽여 괴로워하는 여인에겐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며 위로하고, 한 노인에겐 평생 간직해온 아픈 비밀을 들려주고, 공동묘지근처에선 선교사를 만나 따스한 마음을 주고받는다.

때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길을 멈추지 않는다. 마침내 6주간의 여정 끝에 만난 형은 잔디깎이 기계를 타고 온 동생을 보고 놀라워 한다. 늙은 형제는 어릴 적 함께 보았던 밤하늘의 별을 보며 기쁨의 눈물을 글썽인다.

앨빈이 병든 몸을 잔디깎이 기계에 의지해 그 먼길을 떠났던 것은 오직 한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깨어진 형제간의 정을 죽기 전에 회복해야 한다는 일념!

제16대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이번엔 지역감정이 한결 약화되리라고 모두들 믿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과거엔 단지 영남과 호남으로 나뉘어졌지만 이번엔 아예 동서로 양분되고 말았다. 서쪽 사람들은 환호작약하고, 동쪽 사람들은 깊은 허탈감에 빠져들고 있다. 특히 대구·경북지역에선 심리적 패닉(panic)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넓지도 않은 땅덩이에 남북분단에다, 동서분열, 이젠 세대간의 갈등까지.... 진정 우리에게 화해란 그토록 멀기만한 것인가.

내일은 크리스마스! 2000년전, 지저스 크라이스트는 분열과 다툼으로 찢기고 상처난 세상을 사랑으로 치유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는 사랑의 혁명가였다.

며칠 후면 임오년도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한 해가 저무는 이 시간, 화해의 손길을 내밀기 위해 탈탈거리는 잔디깎이 기계를 타고 끝없이 펼쳐진 아이오와의 옥수수밭 사이를 지나가는 앨빈의 모습이 자꾸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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