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던 지난 22일 낮 텅 빈 매일신문사 편집국으로 어떤 분이 고운 꽃이 핀 난초분을 들고 오셨습니다. 당직 기자가 사연을 듣고는 저에게 안내했습니다. 그 분은 꼬깃꼬깃 접은 신문 조각을 내 보이며 이 사람에게 꽃을 전하러 갔으나 보호자가 없어 전하지 못했다며 신문사에서 대신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분이 만나려 했던 사람은 지난달 19일자 '아름다운 함께 살기'란에 실렸던 송학미씨였습니다. 학미씨는 돈을 벌겠다며 14세 어린 나이에 가난한 집을 뛰쳐나갔다가 백혈병 중증환자가 돼 12년만에 엄마를 찾아 돌아온 처녀입니다.
저는 찾아 온 분이 그냥 꽃 배달을 오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보호자가 없더라도 병원에 맡겨 놓으셨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보내신 분이 누구신지 물었습니다. 그때 그 분은 본인이 기라고 했고, "이것도 전해야 했기때문에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었다"며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놀라 가슴이 떨렸습니다. 이미 한달 전에 보도된 어려운 이웃의 이야기를 새기고 있다가 꽃을 사 몸소 들고 먼 길을 찾아 나선 분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자꾸 묻자 그는 자신의 이름이 '이수동'이고 전화번호가 어떻다고만 밝혔습니다. 개인 휴대전화도 갖고 있지 않다는 그가 내 민 봉투에는 20만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후 담당 기자가 만나기를 청했지만 그 분은 자신이 42세이고 내당동에 산다는 것만 추가로 알려줬을 뿐 끝내 취재를 거절했습니다. 이 분이 쾌유를 빌고 계신 학미씨는 지금도 매우 어려운 투병을 계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월요일이던 다음날 오전에는 어떤 연세 드신 분이 저를 찾아 오셨습니다. "여기가 아름다운 함께살기 제작팀입니까?" 이웃을 위해 작은 성의나마 보태고자 한다며 그 분도 20만원이 든 봉투를 내미셨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동기로 아름다운 함께살기를 만들기 시작했는지 알고 싶다고 하셨고, 영수증을 써 달라고 했습니다. 세금 공제에조차 쓸모 없는 이 영수증이 뭣하러 필요하시냐는 물음에 그 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제 아이들 교육에 쓸려고 합니다". 먼 길을 오셨을 그 분은 성함조차 알려 주길 거부하셨습니다.
최근 한참 동안은 저희 아름다운 함께살기 제작팀의 계좌번호를 신문에 싣지 않았지만 박건희씨는 3만원을 입금해 주셨습니다. 제작팀은 여러 건강한 마음들을 모아 150만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지난 19일 이 난에 소개됐던 청각장애인 최현철.손성옥씨 부부의 둘째아들 영수의 치료비로 전했습니다.
아름다운 함께살기 계좌번호는 대구은행 069-05-024143-008(매일신문사)입니다. 어제는 성탄절이었습니다. 어려운 이웃과 따뜻한 마음들에 축복이 함께할 것을 믿습니다.
박종봉기자 paxkore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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