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단에서…박홍진 성화여고 교사-아이들의 싸움

내 자리는 십년째 도서관이다. 도서관 운영을 맡은 것이 인연이 되었다. 그간 독립된 공간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렸다. 그러다가 올해 초 처음으로 총각 선생이 도서관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 총각 선생은 대학교에 다닐 때 이미 출판사의 권유로 시집을 출간한 분이다. 시인에다 총각인 그 선생님에 대한 우리 학교 학생들의 관심은 대단하다.

크리스마스 전날 있었던 일이다. 한 녀석이 도서관 내 자리가 있는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마침 총각 시인과 함께 있었다. 이제 곧 고3이 될 그 녀석은 우리 자리(총각 선생과 내 책상은 붙어 있다) 주변에 와서는 눈치를 몇 번 살피더니 총각 선생이 한 눈을 파는 사이에 카드 한 장을 내 손에 쥐어 주고는 후다닥 나가 버린다.

같이 있는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에게만 카드를 주는 것이 미안한 듯. 물론 이번 경우는 아주 특별하다. 올해 들어와서는 도서관에 있는 교사방을 찾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내 눈치를 살피다가 총각 선생과 무슨 음모를 저지르고 달아나기 일쑤였다.

하여튼 귀하게 받은 그 카드에 적힌 내용은 이렇다.

"…올해 들어 도서관이 넓어지고 책도 많아졌어요. 사서 선생님까지 오셔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아졌습니다. 도서반인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이 줄어들어 참 편해졌어요. 그런데요 선생님! 할 일이 줄어드니까 도서반 친구들과 만날 시간도 줄어들어 많이 아쉬워요…".

순간, 지난 여름 어느 날 저녁 도서반 회의 모습이 떠올랐다. 저네끼리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있는 옆방에까지 우는 소리도 들려왔다.

야단치러 나가려다 마음을 고쳐먹고 그 소란이 가라앉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한 시간쯤 지나자 소란이 가라앉았고 얼마 후 아직 눈물을 제대로 닦지 않은 대표가 내게 와서 사과를 했다. 그 학생은 "…오늘 회의는 지금까지 회의 중 가장 좋은 회의였습니다"는 말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요즘은 형제가 없이 외동으로 자란 아이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10명 남짓 되는 도서반 아이들끼리도 자주 다툰다. 저네들끼리도 서로를 이해 못하겠다며 내게 하소연하는 때도 더러 있다.

심지어는 도서반을 그만 두는 녀석도 있다. 새해에 도서반 아이들이 먼지투성이의 책을 나르면서 저네들끼리 싸울 수 있는 시간도 마련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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