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과 발전만이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삶의 정답인가. 50년전 우리나라 모습과 흡사한 궁핍한 네팔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지게 된 의문이다.
네팔은 1인당 GNP가 244달러(2001년)밖에 안되는 가난한 나라. 그런데도 수도 카트만두를 비롯, 안나푸르나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평화롭다.
꾀죄죄한 외모로 생활고에 찌들리고 시달렸을 법도 한데 늘 여유있고 인정이 넘친다.
왜 그럴까. '산의 나라'로 알려진 네팔은 사실은 '신의 나라'이자 '사원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혜초여행사(대구지점 053-567-8848)를 따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매일신문 1월 15일자 13면 참조)과 카트만두 여행을 다녀왔다.
◇산의 나라=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을 직접 느끼는데는 트레킹이 최고다.
만년설의 멋진 경관과 고산족들의 때묻지 않은 삶을 물씬 느낄 수 있다.
고산지대에선 식물이 자라는 높이까지는 사람들이 산다.
평지가 없기 때문에 급경사 지역임에도 계단식 논밭을 일궜다.
산 아래에서 꼭대기부분까지 빈틈이 없다.
사람이 자연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모습이 애처롭다.
그래도 트레킹 길 주변 사람들의 생활은 나은 듯했다.
롯지(숙박시설)와 식당을 운영해 관광수입이 괜찮은 편이기 때문이다.
안나푸르나 지역의 소수민족인 구룽족은 용병으로 잘 알려져있다.
주로 영국, 인도, 스리랑카의 용병인 구루카병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제대후 고향으로 돌아와 연금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생활도 넉넉한 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인 촘롱과 타다파니 중간지점 김롱에서 '브리티시 고르카' 롯지를 운영하는 데부마야 구룽(53)의 남편도 영국에서 용병생활을 했다.
그래서일까. 전기에다 TV까지 갖춘 걸 보면 고산지대에선 보기드문 호화생활이었다.
"이곳 고산족들의 대부분 여성은 수명이 짧습니다.
남자들은 등반객을 따라나가고, 용병으로 나가있기 때문에 생활이 고달플 수밖에 없지요".
트레킹 가이드 다와(35)의 말이 그럴 듯했다.
가끔씩 보이는 남자들은 포커게임에 빠져있었고 소 사료나 땔감용 나무는 대부분 여자 몫이었다.
◇신의 나라=네팔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신의 문화. 신을 섬기기위해 매달 축제가 있을 정도다.
대부분의 큰 행사도 신에 대한 숭배를 표현했고, 신을 모신 사원을 중심으로 모든 일들이 행해진다.
네팔 사람들에게 종교를 제외한 생활이란 상상하기 힘들다.
네팔은 힌두교가 국교로 87%가 힌두교를 믿는다.
그러나 불교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불교사원내에 힌두사원이 있고 힌두사원내에 불상이 공존하고 있다.
종교의식행사도 힌두교인이 불교인과 함께 참여하여 거행한다.
그래서 신의 나라에 걸맞게 종교간의 마찰이 없다.
힌두교의 주요 성지는 네팔에 모여있다.
인도에서의 성지순례 버스 행렬이 끊이지않는다.
석가모니가 탄생한 곳도 네팔의 룸비니 지방이니 네팔이 신들의 나라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살아있는 소녀 신 '쿠마리'가 현존하고 있는 것도 큰 특징이다.
구왕궁(하누만 도카.Hanuman Dhoka) 앞 사원 마당에 서서 기다리면 하루에 두번씩 얼굴을 보여준다.
앳된 표정이 한눈에 드러나는 열살 안팎의 여자아이다.
네팔 사람들은 쿠마리가 뛰어난 신통력과 예지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이 쿠마리는 통상 4, 5세 경에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다.
하지만 감금된 것이나 다름없는 쿠마리의 생활은 불행하다.
초경이 시작되면 인간세상으로 돌아와 평범한 생활을 하지만 대부분 시집을 못 간다.
◇사원의 나라=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는 세계문화유산의 보고이다.
3개의 구왕궁 지역외에 4개의 사원(파슈파티나트, 찬구 나라얀, 보드나트, 스와얌부나트)이 지난 79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그러나 세계문화유산을 지키고 보존하려는 노력은 전혀 없다.
옛왕궁 1층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기념품가게가 자리잡고 있다.
목조건물내부로 얼기설기 얽힌 전선이 불안해 보인다.
유네스코에서 보존 노력이 없으면 지원을 끊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정도다.
야생 원숭이들이 많아 '몽키 템플'로 불리는 스와얌부나트(Swayambhunath) 사원은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 원래 있던 불교사원 바로 옆에 힌두교사원을 만들어 라마 스님의 독경과 힌두교인들의 기도소리를 같이 들을 수 있다.
현지 사람들은 관광객들과 함께 마니차(기도하면서 돌리는 바퀴)를 돌리며 "옴 마니 반메 홈"을 왼다.
'다음 세상에는 깨끗한 마음으로 태어나게 하소서'라는 짧은 기도문이다.
그래서일까. 지금 생활이 힘들고 고달파도 다음 세상을 기다리며 즐겁게 산다.
굳이 열심히 일하려 하지도 않는다.
낙천적이고 밝은 그들의 생활은 종교생활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구왕궁 옆 오래된 힌두교 사원 처마 밑에는 쳐다보기 민망할 정도의 각종 성행위 조각들이 지붕을 받치고 있다.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기이한 자세들이 다 표현되어 있어 관광객들의 눈길을 확 끈다.
시바신의 '인구를 많이 늘리라'는 뜻이 담겨있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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