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 때의 황희(黃喜) 정승은 여러 일화를 남긴 분이다.
그 중에 '너도 옳고, 너도 맞고'란 사연이 있다.
계집 종 둘이 아귀다툼을 하다 하나가 정승에게 상대의 잘못을 하소연하자, 맞장구를 쳐준다.
이에 불만을 품은 다른 하나가 상대가 거짓말을 했다고 하자 역시 고개를 끄덕여준다.
옆에 있던 아들이 "어떻게 두 쪽 다 옳을 수가 있느냐"고 묻자 "네 말도 맞다"는 하교다.
고부간에 얽힌 속담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있다.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옳고,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다는….
▲이처럼 세상사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일 때가 많다.
딱 부러지는 진실도 있겠지만 보기에 따라 이렇게 비치기도, 저렇게 비치기도 한다.
차라리 확실한 것은 거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당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모든 진실이 파묻혀버린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그 진실에 이르는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큰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는 법이다.
위인들의 삶이나 고전으로 불리는 책들에서 그런 진실들을 만나게 된다.
▲신문은 태생적으로 진실과 거리가 있는 존재다.
불과 몇 %의 내용만이 진실이라는 어떤 조사도 있었다.
1년이 걸릴 재판을 10분만에, 6개월이 걸릴 재난 수습책을 1시간만에 판단해야하는 언론의 속성상 오류는 필연적이다.
특히 이현령비현령의 사회문제라면 항상 오보(?)만 내게 된다.
세상 여러 쪽 모두를 만족시키는 글은 아무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오보를 이유로 가판신문 구독을 끊도록 언명했다.
정부의 결정치고는 너무 자질구레하다는 인상을 준다.
여하튼 이 말에 따라 청와대와 부처들이 줄줄이 신문구독을 중단하고 있는 모양이다.
언론의 폐해(?)에 대한 개인적 경험이 그런 결정을 내리게 하지 않았나 짐작된다.
그러나 이 역시 이현령비현령의 문제가 아닐까. 정부의 처사를 언론에 대한 새로운 윤리성의 요구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언론 때리기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문의 진실수준은 환경의 산물이다.
나라 전체가 부패하고 질서가 무너지면 청정한 언론이 살아남기 힘든다.
정권이 세무사찰로 정치보복을 하면서 너는 바른 말만 하라고 할 수도 없다.
정부가 엉터리 시책, 엉터리 인사를 하면서 신문만은 엉터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도 과욕이다.
수준은 서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조치가 '진실'인지 여부는 세월의 검증을 필요로 한다.
정부가 언론에 요구하는 윤리성과 걸맞은 도덕성과 정당성, 정책적 성과를 이룩한다면 그 조치는 긍정의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정치적 편의에 의한 것이었다면 언론 때리기로 읽혀질 것이다.
시어머니, 며느리 어느 쪽 말이 맞는 것일까. 박진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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