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부끄러운 도시 디자인

드디어 서울의 청계천 복원사업이 시작되었다.

1970년대 근대화의 상징이던 서울의 청계고가도로를 뜯어내고, 복개된 청계천을 원래 모습으로 되살리는 기공식이 1일 열렸다

이 거대한 역사(役事)는 2005년 9월까지 고가와 청계천 복개구조물을 철거,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하는 계획이다.

친생태적인 복원 바람이 부는 것은 서울시만이 아니다.

언젠가 전주를 방문하고 전주시내를 흐르는 하천이 예전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반가웠던 적이 있다.

물어보니 새로 선출된 시장이 그 천변의 과거 시멘트 덩어리를 벗겨내고 자연 그대로 복원하여 이제 쉬리가 사는 일급수가 되었다고 했다.

이렇게 역사 유적이 복원되고 자연생태환경이 복구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비용이다.

청계천의 복원비용은 단지 서울시가 지출하는 3천577억원만이 아니다.

주변 상가들이 철거되고 새로운 도로가 놓이고 그 과정에서 인근 주민들의 손실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공사로 말미암아 야기되는 교통 혼잡과 먼지 소음의 발생도 무시할 수 없다.

엄청난 비용과 고통이 따르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이런 비용을 개발시대의 불기피한 유산으로 치부해 왔다.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하다 보니 이렇게 문화적 건축적 친생태적 배려와 고려를 할 수 없었다는 점을 양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외국의 여러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이런 양해를 할 기분이 들지 않는다.

로마의 수도교는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아직도 그대로 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로마까지 갈 필요도 없다.

파리는 말할 것도 없고 이미 9세기에 절정을 이룬 체코의 프라하 같은 도시에도 한 도시로서의 기반시설이 지극히 잘 디자인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도시에는 기가 막히게 잘 설계되어 있는 하수도시설이 외국인들에게 관광코스로 되어 있다.

수세기 전부터 이미 도시의 인구집중과 이로 인한 도시기능의 수요를 예측하고 주택과 교통, 상하수도 시설까지 준비해 나갔다는 것은 본받을만한 일이다.

사실 외국의 도시를 자주 방문해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한국의 강산이 아름답다는 것을 역으로 배우고 온다.

단순히 평야지대에 들어선 유럽의 도시들과는 달리 산과 강이 함께 어우러지는 한국의 도시들은 그만큼 자연환경으로 보면 훨씬 더 아름답게 디자인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아름다운 자연을 살리거나 조화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자연을 파괴하고 어울리지 않는 방식으로 개발해 왔다.

서울의 북한산이 온통 가릴 정도로 고층아파트가 들어서고 한강의 자연스런 물줄기와 둔치, 그 속의 숲들이 사라지고 을씨년스런 시멘트덩어리로 강변이 치장되었다.

언젠가 우리는 큰 비용을 지출하면서 다시 그 고층아파트들을 제거하고 강변을 복원할 것이다.

마치 서울 남산의 외국인아파트가 철거된 것처럼.

이 어리석은 짓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지었다 부쉈다를 반복할 수는 없다.

한 번 지을 때 제대로 짓고 그것이 수백년 수천년을 가고 그것이 관광 코스로까지 되는 것을 이제 남의 나라 일로 부러워할 수만은 없다.

얼마전 미국을 방문했을 때 잘 아는 한인 변호사를 만난 적이 있다.

부부가 스페인의 빌바오를 다녀온 적이 있다고 했다

그곳에 있는 구겐하임미술관 본관 건물을 보러 갔다는 것이다

건물 하나 보러 대서양을 건넜다니 21세기가 문화의 세기라는 말이 실감났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어떤 건물 하나 보러, 어떤 시설 하나 보러 태평양을 건너 오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잘되면 자신의 덕,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짧은 시간 안에 경제성장을 이룬 우리 선배 세대의 공과를 균형있게 바라보는 것은 중요하다.

다른 제3세계와는 달리 지난 6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세계 10대 교역국으로까지 성장시킨 이들의 공로를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지나간 시대의 허물과 과오를 정확히 인식하고 다시 되풀이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청계천의 복원공사를 바라보며 우리 모두가 다짐하고 결의해야 할 일이다.

박원순(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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