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 사는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유난히 눈물이 많은가? 이산가족이 만나는 장면이 아니라도 우리는 이미 텔레비전에서 북쪽 사람들의 눈물을 많이 보아왔다.
방북 기간 중에 내가 본 것은 북에 사는 사람들의 눈물뿐 아니라, 남에서 같이 간 사람들의 눈물도 때와 장소가 없었다.
백두산 장군봉에 서서 천지를 내려다보며 남쪽 사람과 북쪽 사람이 손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부를 때는 감격에 벅차서 눈물이 흘렀다고 하자. 그러나 '접대원', '의례원', '안내원'들에게 있어서 남쪽에서 왔다는 우리가 무엇이기에 '또 오십시오'라며 글썽이는 눈물은 무엇인가? 소학교 아이들이 생소한 남쪽 어른들이 잠시 머물다 떠난다고 애닯아 하는 눈물은 무엇인가? 내 머릿속에는 아직 '그 이유가 무엇인가?'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그들은 충청도 어디에서나, 강원도 어느 작은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과 하나 다르지 않다.
남과 북은 만나면 눈물이다.
남북교원이 만난 상봉의 자리에서 남북의 교원들이 같이 흘리는 눈물은 무엇인가? 부질없는 일 같지만 그 눈물의 의미를 좀 분명히 알아야 할 것 같다.
역사에 처음으로 교사가 대규모로 북의 초청으로 북쪽의 교원들을 만나기 위해서 직항로로 북을 방문하였다.
2003년 7월 29일, 인천공항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으나, 순안공항은 개어있었다.
3년 전 김대중 대통령이 비행기 문 앞에 나와 한참이나 계단을 내려오지 못하던 그 순안공항 비행장에 우리 일행이 내렸다.
공항에서 일하는 일꾼들과 우리를 마중하러 온 이들이 열렬한 박수로 환영해주었다.
우리에게는 그 쪽에 보일 여권도 없었다.
입국신고서도 입국심사도 없었다.
짐을 보자고도 하지 않았다.
대구공항에서 떠난 비행기로 제주공항에 내린 것 같이 그렇게 우리는 공항 청사를 나와 버스를 타고 평양 시내로 들어갔다.
길가 버드나무는 잎이 무성하고, 논에는 남쪽에서와 같이 벼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평양 시내에도 자동차가 많지 않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도로를 무단으로 가로지른다.
우리는 "안동 사람들 수준이다"하며 웃었다.
우리가 가는 것은 관광이 아니다.
누구나 갈 수 있는 금강산 관광도 아니고, 중국을 통해서 가는 백두산 관광도 아니다.
그래서일 것이다.
한 달이나 전부터 '내가 진정으로 북에 가기는 가는 것일까?'하는 생각으로, 가는 날이 가까워졌을 때는 '가서 무엇을 해야 할까?'하는 고민으로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출발 하루 전인 7월 28일 낮에 모인 우리 방북단은 누구 할 것 없이 흥분과 긴장이 겹쳐 있었다.
다들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역사적인 남북 교원이 만나는 일에 역사적 책무가 무엇인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후 1시에 시작한 '통일부' 연수와 전교조에서 준비한 연수가 이어졌다.
연수 강사들이 우리에게 하는 말은 축하의 말과 함께 "이 땅에 평화와 통일에 도움이 되는 큰 역할을 하고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말이었다.
이 말이 내게는 덕담으로 들리지 않고 어깨를 더욱 무겁게 하였다.
밤이 깊어졌지만 머리는 혼돈스러웠다.
무엇인가 중요한 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것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밤늦게야 나는 "여행의 목적은 여행일 뿐이다". "그래, 우리가 무사히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정리하는 수밖에 다른 수가 없었다.
그랬다.
아직 그 이상은 욕심이다.
그래, 많은 사람들이 좀더 자유로이 북에 가고, 북에서도 남으로 오고 더 많은 눈물을 흘리자. 그리하여 전쟁을 막고 통일로 가자!
배용한(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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