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젊은이들의 가슴에 이상과 우정, 추억을 아로새겼던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가 막을 내렸다.
성공이라는 성적표를 받은 열 하루 동안의 축제. 축제가 끝나고 난 뒤 참가했던 사람들의 마음엔 어떤 빛깔의 기억들이 남았을까. 폐막식 식전 행사에서 '백의민족', '오색날개'를 선보였던 경북여자정보고 학생들을 폐막 이틀 후에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방학마저 반납한 채 연습에 매달렸던 이들의 표정에는 6만여 관중의 환호성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듯한 흥분이 가시지 않아 보였다.
"비록 고교생이지만 세계인의 축제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 큰 의미가 있죠. 다음 번엔 올림픽도 개최해 다시 한 번 한국과 대구의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U대회 폐막과 함께 학교로 돌아와 다시 교복을 입었지만 학생들에겐 열여덟의 나이를 훌쩍 뛰어넘은 성숙함이 엿보였다.
그간의 과정을 배주현양이 설명했다.
"처음엔 U대회 행사를 한다고 하자 모두들 반응이 썩 좋지만은 않았어요. 초등학교 운동회 때부터 매스게임이라면 지겨웠잖아요. 날씨도 더운데 몇달씩이나 연습해야 하느냐며 불만도 있었죠. 하지만 우리 고향에서 열리는 세계인의 축제를 빛내는 주인공이 된다는 의미 하나에 모두들 잘 참아냈습니다".
그래도 한창 자유로워지고 싶은 10대들에게 5개월간의 연습은 쉽게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난 4월1일부터 8월31일 폐막식 직전까지 꼬박 5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연습이 계속됐다.
오전수업을 마친 오후1시쯤부터 시작돼 매일 4, 5시간씩이었다.
비가 오건 땡볕이 내리쬐건 아랑곳없었다.
여름방학도 고스란히 연습에 바쳐졌다.
중복이었던 지난 7월26일 두류야구장에서 연습할 땐 날씨가 하도 더워 소방차가 두번이나 물을 뿌리기도 했다.
박혜봄양은 "방학은 겨울에도 있고 내년에도 있지만 대구에서 이렇게 큰 국제대회는 언제 다시 열릴지 모르잖아요"라며 "힘들었지만 지나온 어느 여름방학보다 보람 있었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또다른 의미로 다가온 것은 우리 춤. god나 nrg 같은 댄스 그룹들에게 빠진 학생들로선 살풀이 전통 춤사위가 그다지 흥미로울 수 없는 것. 몸짓도 어색하고, 배우면 배울수록 어렵기만 했다고 한다.
김보름양은 "우리 것이 좋은 거라고 해도 배울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다 수백 명이 한 몸같이 해야 하니 쉽지는 않았다"며 "그래도 혹시 나 때문에 공연이 망쳐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집에서 거울을 보며 연습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개막식을 이틀 앞둔 지난달 20일, 그동안 땀흘리며 연습했던 모습을 찍은 화면을 보면서는 가슴이 찡했다고 했다.
이윤진양은 "마치 유명 예술단의 멋진 공연을 보는 듯 너무 멋있었어요. 저게 과연 우리들인가 싶었죠. 살풀이 춤에 서린 한국적 아름다움도 느껴졌어요"라고 돌이켰다.
모든 땀과 고생은 6만여 관중의 환호성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자부심으로 변했다고 했다.
학교로 돌아온 학생들. 그들에겐 즐거운 기억도 적지 있었다.
"러시아 선수에게 티셔츠도 선물로 받았고, 호주선수들에게는 코알라 인형을 받기도 했다"는 박혜봄양은 "공연 때 입었던 한복과 함께 평생 간직해 가보로 물려줘야겠다"며 깔깔거렸다.
배주현양은 "이제 U자만 봐도 고개가 절로 돌아가요. U대회 주제가도 절로 흥얼거려지구요"라며 평생동안 되뇌이게 될 것 같다고 했다.
행사에 참가한 의미를 느꼈느냐고 물었더니 모두들 "170여개국의 선수들이 한국과 대구를 알고 가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대구를 세계에 알리는데 한 몫 한 거죠"라며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대학생들의 축제인 U대회에서 평생 간직할 추억거리를 만든 고교생들. 그들의 표정 속에는 TV 앞이나 경기장 스탠드에 앉아 쳐다보기만 하는 제3자가 아니라, 스스로의 땀을 쏟아 대회를 만들어냈다는 자랑스런 주인의식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최두성기자 ds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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