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허탈감 속에 사흘이 지났다.
지난 10일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자신에 대한 재신임을 묻겠다고 발표하였다.
반듯하게 이루어지는 일 하나 없는 세상사와 경제적 고통 때문에 피곤해진 국민들을 더욱 지치게 만드는 뉴스였다.
그 이유는 국민들에게 축적된 여러 가지 불신으로 인해 현 정권의 정통성인 도덕성이 심한 훼손을 입어 국정운영에 한계가 왔다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의 이러한 정치행위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국민들이 합의해 준 대의 정치의 제도권이 아니라 장외에서 국민들을 직접 상대하는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대통령의 역할과 책무는 이슈 제기보다는 이슈 해결에 있다.
국민들의 의사로 형성된 정치구조를 인위적으로 붕괴시키거나 조작하여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끝내는 국민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며 마지막 선택을 요구하는 정치행위는 국민들의 기대와 바람이 아니다.
국민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재신임투표라는 정치과정을 통해 훼손된 도덕성을 사면 받고 권력기반을 다지겠다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발상이다.
국민들로부터 재신임을 받았다고 가정하자. 그런다고 여소야대의 정국구도가 달라지는가? 분열된 국론이 재결집되어 국민적 에너지를 창출시킬 수 있을 것인가? 매우 회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국면전환형의 재신임 요구보다는 내년 4월에 치러질 총선을 통하여 여소야대라는 정치구도를 극복하고 국정경영능력을 복원하는 일이 참여정부다운 당당한 정치행위일 것이다.
경기침체로 인한 실업문제, 부동산가격의 폭등 문제, 대통령측근의 비리문제, 재독학자 송두율씨 문제로 인한 이념논쟁, 이라크추가파병문제를 둘러싼 국론분열, 신당창당을 위한 대통령의 무당적 상태, 카드 빚 등으로 인한 신용불량자 문제 등 현안 이슈를 해결하는 리더십을 통해 여대야소의 정국구조를 창출하는 일이야말로 국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책임정치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은 국민이 부여해준 권력을 행사하여야 한다.
국민들은 권력의 남용을 거부하지만, 정당한 권력의 행사를 반대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정당한 권력적 수단의 행사를 포기하여서는 안된다.
권력의 포기는 국정경영의 책임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권력은 제도와 도덕성에 의하여 정당성 있는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다.
제도적 장치나 도덕성 중 어느 한 가지만으로는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은 창출될 수 없다.
재신임과정을 통하여 국민들로부터 도덕적 사면을 받는다 해도 여소야대라는 정치구조의 제도적 틀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국정경영의 난맥은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어찌되었던 주사위는 던져졌다.
싫든 좋든 국민들의 선택이라는 몫만 남았다.
선택이 정략적 차원에서 논의되거나 결정되어져서는 안된다.
비록 국민들이 벼랑끝에 내몰린 형국이 되어 버렸다고 할지라도 이 난국을 극복할 지혜와 슬기를 모아야 한다
비록 지치고 피곤한 심신일지라도 대통령의 재신임요구를 언제,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답할 것인가에 대해 냉철하게 논의하고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과 언론도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과 일부 언론 또한 오늘날의 정국혼란에 대해서는 일정분의 책임도 있다 할 것이다.
대통령도 대통령으로서 걸맞은 정치력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여소야대의 정국구도와 일부 언론에 국정혼란의 책임을 전가시키는 듯한 재신임 요구태도를 버리고 겸허하게 국민의 선택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우동기(영남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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