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부터 반찬을 장만하면서 단풍구경에 들떠 있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집을 나설 때 매일 보살펴주던 손자를 걱정하던 할멈이 갈 길을 예견했던 것 같아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21일 밤 11시쯤 사고소식을 접하고 대구에서 한 걸음에 안동병원 영안실을 찾은 김석술(68.달서구 두류1동)씨는 시신 안치실에서 부인 박태수(65)씨의 심하게 훼손된 주검을 발견하고 맥없이 주저앉았다.
40여년 전 결혼 한 김씨 부부는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2남 2녀를 남부럽지 않게 키워 모두 결혼시켰다.
요즘에는 손자들 재롱을 즐기며 고생으로 물들었던 청춘을 보상받는 듯했다.
그러나 이들의 소박한 꿈을 하늘은 앗아가 버렸다.
김씨는 "아내는 3년 전까지 서대구시장 양말공장과 취로사업, 식당 잡일 등 온갖 궂은 일로 생계를 꾸려왔습니다.
죽을 고생만 하다가 이제 손자들 재롱을 보며 살만하다 싶었는데 이렇게 가버립니다"며 영안실 벽을 부여안고 오열하며 쓰러졌다.
숨진 부인 박씨는 결혼 후 남편 김씨가 막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에 보탬이 되기 위해 서대구시장내 양말공장에서 일당 2만5천원을 받으며 일하다 3년 전 허리디스크로 일을 그만 두었다.
박씨와 남편 김씨는 두 칸 짜리 월셋집에서 살았지만 손자들의 재롱으로 지난날의 고생을 말끔히 씻어냈다.
숨진 박씨는 거의 매일 대구시 칠곡에 사는 큰아들 집으로 가 첫돌을 앞둔 작은 손자의 옹알이를 듣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
스스로 남부러울 것 없는 행복한 노년이라고 여겼다.
남편 김씨는 "할멈은 3년 전부터 산악계에 들어 산행을 다녔습니다.
산악계에 들기는 했지만 허리디스크 때문에 산에는 오르지도 못하고 산 아래에서 몇 시간씩 혼자 시간을 보내다 돌아오곤 했습니다"라며 멍한 눈으로 어두운 하늘을 보았다.
큰아들에게 엄마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공중전화를 걸던 김석술씨는 "엄마가 죽었다.
엄마가 죽었어. 단풍구경길이 황천길이 돼 버렸다"며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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