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라는 대중가요의 한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에서 누구나 이 계절의 정서와 이미지를 선연하게 느낄 수 있다.
시골에서 자란 이들에게 무엇인가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듯한 억새밭은 또 하나의 추억이다.
유년 시절 억새 한줌 뽑아 온 산을 동네삼아 흔들고 다니는 바람에 솜털이 머리를 하얗게 덮은 일, 비를 만들어 교실 바닥을 쓸던 일, 겨울에 땔감으로 베어 아궁이에 불을 지피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그러나 요즘은 억새가 꽃집의 장식용으로만 사용돼 억새의 신세도 많이 달라졌다.
직업상 여러 곳을 다니면서 많은 억새를 체험해본 것이 자랑이라면 자랑거리다.
국내 최대를 자랑하는 '사자평' 초원을 누비며 굽이치는 억새 물결 속에서 역사의 소리를 듣기도 했고, 산 전체가 둥그스름하게 펼쳐진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에서 억새와 더불어 원색으로 물결치는 등산객들의 모습을 보기도 했다.
잡목이 없어 주변이 시원하게 트인 창녕 화왕산의 억새밭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기도 했고, 비슬산 정상의 마른 땅에서 피어나는 억새의 끈질긴 생명력도 지켜보았다.
제주 산굼부리 억새 군락 속에서는 누가 훔쳐볼세라 꼬옥 껴안고 사진 찍는 신혼부부의 새 삶을 향한 희망도 발견했었다.
우리의 가을 하늘은 정말 아름답다.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맑고 푸르름을 간직한 이 가을 하늘을 벗삼아 떠나는 억새 여행은 이 계절에서만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다.
석양이 대지를 물들일 때쯤 억새 사이로 숨어드는 햇살과 함께 아이들의 모습을 필름에 담아보는 것도 더없는 추억거리다.
험한 산길을 걷느라 팍팍해진 다리도 쉴겸 그대로 억새밭에 누워 가을의 소리에 조용히 귀 기울여보는 것도 좋다.
얼마 전까지만도 정월대보름이면 화왕산에서는 억새 태우는 행사가 매년 열렸다.
산 정상 억새 밭에 불을 지피면 억새는 훨훨 타올라 한줌의 재로 사라지지만, 새해 다시 피어날 억새들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
이런 억새의 한해살이는 억새밭에 서보지 않은 사람이면 알 수 없는 멋이 담겨 있다.
이희도 (주)우방관광 대표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원장 탄핵 절차 돌입"…민주 초선들 "사법 쿠데타"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