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칠레 FTA' 한국농업 미래는(2)-출하시기 조절로 틈새시장 공략

"김천과 영동의 시설포도 출하는 6월, 영천의 시설포도 출하는 7월말~8월초로 서로 시기를 조절해왔습니다.

하지만 칠레산 포도가 본격 수입되면 이를 피하기 위해 김천, 영동, 영천이 비슷한 시기에 포도를 홍수출하하면서 공멸하고 말 것입니다".

금호읍 교대리에서 시설포도를 재배하는 농업인 신문수(50)씨는 한숨부터 짓는다.

별다른 대체작목도 없어 그저 정부의 대책만 쳐다보고 있다.

3천여평의 과수원에서 복숭아농사를 짓는 박수현(56.청도군 화양읍 서상리)씨는 복숭아나무가 20년 이상된 고목인데다 품종도 오래돼 신품종으로 과수원을 다시 조성할 계획을 세웠다가 주춤하고 있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비준되면 애써 5~6년 키운 복숭아나무를 뽑아야하는 사태가 오지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농업인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한-칠레 FTA가 비준되면 우리 농업은 살 길이 없다는 절박한 위기감이 읽힌다.

특히 과수농업의 경우 직접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에 불안감이 더하다.

그렇다면 과연 칠레산 과일이 수입되면 얼마만큼의 피해가 뒤따를까.

1999년 12월부터 2002년 10월까지 6차례 FTA공식협상을 추진한 한국과 칠레는 쌀.사과.배 등 3개품목은 완전제외시키기로 합의했다.

사과와 배는 국내산 가격이 10배 이상 높기 때문이었다.

포도는 매년 11월~익년 4월까지 6개월간에 한해 10년내에 균등비율로 관세를 감축하는 계절관세를 적용한다.

물론 10년 이후에는 무관세로 전환해야 한다.

칠레산 포도의 수입유통시기는 3~6월로 주로 8~10월에 출하되는 노지포도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않을 전망이다.

다만 4~6월에 출하되는 가온재배 시설포도는 직접영향권에 들어간다.

농업인들이 희망을 걸고있는 것은 무가온재배 시설포도다.

출하시기가 7월초부터 8월중순 사이로 칠레산과 유통시기가 겹치지않고 노지재배보다 출하가 이르다.

때문에 높은 가격을 받는 틈새시장이어서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막연히 정부대책을 기다리지 않고 농업인들이 스스로 대책마련에 나서 경쟁력을 갖춰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박창기 김천시농업기술센터 과수원예담당은 "김천지역의 상당수 시설포도재배 농업인들이 무가온 재배방식으로 전환해 생산비를 낮추는 등 한-칠레 FTA에 대비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천시 어모면 다남리에서 4천200평에 포도농사를 짓는 서호근(55)씨는 시설재배에서 노지형 간이 비가림식으로 바꾼 후 600평당 생산비를 5천만원에서 2천500만원으로 절반이나 줄였다.

또 품종도 캠벨, 거봉에서 일본품종인 자옥으로 바꿨다.

철저한 품종연구를 통해 거봉과 비슷한 자옥을 상품으로 출하하는데 5년이 걸렸다.

서씨는 "기름값 안들고 품종도 경쟁력이 있어 연간 1억여원의 소득을 올린다"고 말했다.

김종일 김천포도회 회장도 "무가온재배로 포도 출하시기를 조금 늦춰 하우스 끝물과 노지포도가 생산되는 중간시간인 포도의 단경기(7월20일~8월초)에 맞추면 칠레산 수입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포도주산지인 영천시는 포도 수입개방에 대비해 품종갱신으로 고품질의 포도를 생산하고 무가온 시설재배 및 비가림 재배시설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정태준 영천시과수원예담당은 "포도재배면적 0.5ha 이하는 폐원시켜 일정규모의 경쟁력을 갖춘 포도농가를 지원,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복숭아와 자두는 칠레산 수입유통기간이 국내산과 경합되지않아 직접 영향은 없으나 여타 품목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복숭아.돼지고기.단감.키위.사과주스.포도즙 등은 10년동안 관세를 균등감축하고 무관세로 전환하도록 되어있다.

11월부터 3월까지 현지에서 수확한 칠레산 복숭아는 12월부터 5월까지 우리나라에 들어와 판매된다.

사과.배.감귤.단감 등의 출하시기와 경합하게 돼 전국 과수농가는 적잖은 피해를 입을 전망이다.

조기동 청도군농업기술센터 과수전문컨설턴트는 "현행 관세 50%일 때 ㎏당 평균가격이 2천698원인데 관세를 철폐하면 1천881원밖에 되지않아 복숭아로 인한 청도반시 피해가 엄청날 것"이라고 밝혔다.

청도군은 복숭아에 이어 감 소득이 연간 128억원으로 농가소득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군은 칠레산 단감이 들어오면 가격하락으로 소득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고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최세균 연구위원등은 최근 펴낸 정책연구 보고서에서 "칠레산 과일이 국내시장에 출하되면 시장에서 가격경쟁이 불가피하므로 키낮은 사과 밀식재배와 Y자 밀식재배(배)와 같은 저비용 과원관리 방식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소비자의 과일소비 행태가 고급화되고 있으므로 물량보다는 품질에 중점을 두고 생산과 유통과정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야한다"고 말했다.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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