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幽靈 감투'

요즘 '선거에 입후보한다'는 말로 통용되는 '출마(出馬)'라는 말은 '말을 타고 나간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장수가 군사를 이끌고 전장에 갈 때도 이 같이 표현했다.

옛날 무과(武科)를 볼 때도 가장 먼저 본 시험이 출마였다.

'송와잡기'에는 과녁에서 20보 떨어진 곳에서 말을 달려 6량의 화살을 쏘아 네 번을 맞춰야 1차 합격자로 뽑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조선조 중종(中宗) 때는 무사를 한해에 1천여명을 뽑아야 했는데, 말을 잘 다루는 인재가 거의 없어 난센스를 낳기도 했다.

궁여지책으로 소를 타고 과녁 가까이 달려가 멈춰선 뒤 활을 쏘게 했다는 기록(어우야담)도 남아 있다.

▲선거철을 앞두면 출마를 싸고 갖가지 웃지 못할 촌극들이 빚어져 '훌륭한 말도 주인을 잘 만나야 빛을 볼 수 있다'는 한퇴지(韓退之)의 '명마론(名馬論)'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명마라 해도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마굿간에서 평범한 말처럼 학대를 받다가 죽고 만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은 말은커녕 소도 못 다루는 함량미달의 사람들이 소까지 가짜로 만들어 타려고 드는 판이니 한심스럽다.

▲내년 4.15 총선을 겨냥해 급조된 단체의 '유령 감투'들이 넘쳐나고 있다고 한다.

급조된 단체들은 출마 희망자들이 경력을 부풀리기 위해 만들어진 '위장 총선 조직'이 대부분이어서 회원이 거의 없고, 활동 실적도 없게 마련이다.

선거구마다 포럼.위원회.연구소.시민모임 등 정체도 없는 단체의 직함들이 속속 등장하는가 하면, 유령 감투가 10개가 넘는 경우마저 없지 않은 모양이다.

▲현행 선거법에는 정치 신인들이 법정 선거운동 기간 이전에는 선거 관련 활동을 할 수 없게 돼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명함에 그럴듯한 직함을 넣어 유권자들을 현혹하려는 총선 출마용 유령 감투들이 판을 치는 세태다.

썩은 고깃덩이에 쇠파리가 끓듯이 힘있는 곳에는 감투나 이권에 눈먼 사람들이 몰려들게 마련이지만, 해도 너무 하지 않은가. 아직도 정도(正道)나 제도보다 힘과 변칙에 따라 움직이는 모리배들이 적지 않은 것 같아 씁쓰레해진다.

▲우리는 선비정신을 이어왔다.

얼어죽어도 곁붙어 햇살을 쬐지 않고, 굶어죽어도 빌어먹지 않는, 그러면서도 신념과 절도를 지키는 것이 그 정신의 주요 덕목들이다.

고학력 사회인 지금의 우리 사회에는 지식인이 많아도 지성인은 드물다고 한다.

지식인들이 정사(正邪)와 시비곡직(是非曲直)을 가리고 사회 정의(正義)를 바로 세워야 하는데, 시류에 영합하거나 곡학아세(曲學阿世)를 일삼아서야 되겠는가. 정치 모리배는 그렇다 치더라도, 선거철을 맞으면서 유권자들은 정신을 차려야 하리라.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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