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군포로 전용일씨 52년만에 가족상봉

"분이야, 용서해라" "오빠! 살아있었구나"

"수일아! 형님! 끝분아! 오빠!"

26일 오후 2시30분 서울 용산구 국방회관 1층 연회실. 북한을 탈출해 24일 귀환

한 국군포로 전용일(72)씨 가족과 전씨는 처음 대면하는 순간 잠시 침묵이 흐르다

이내 서로 부둥켜 안은 채 이름만 불렀다.

지난 1951년 군에 입대한 전씨는 53년 인민군의 포로가 된 이후 지금까지 가족

들을 돌보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을 느낀 듯 눈물만 흘리다 막내인 여동생 전분이(5

7.대구시 달서구 진천동)씨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끝분아'라고 외치며 오열했다.

아명이 '끝분'인 분이 씨는 "네가 끝분이야. 끝분아!. 오빠를 용서해라. 오빠

구실 못했다"는 전씨의 말에 "오빠 살아 있었구나. 큰 일 해냈다"며 5살 때 생이별

한 오빠를 위로했다.

전씨는 이날 상봉한 동생 2명의 이름은 쉽게 기억했으나 군에 입대했던 51년에

시집간 누나 전영목(78.대구시 달서구 진천동) 씨는 얼굴을 보고도 잘 알아보지 못

해 한동안 가족들을 안타깝게 했다.

분이씨는 "오빠. 영목이 누나 모르겠어. 한일(맏형)이 오빠 바로 동생 영목이

누나야. 오빠가 군대갈 때 화양으로 시집간 누나야"라고 설명하자 그제서야 누나를

기억해낸 듯 "맞아, 날 장가보내준다고 그랬지. 누나. 누나.."라며 목놓아 울었다.

영목씨는 뒤늦게나마 자신을 알아보고 얼굴을 감싸안은 채 "누나. 이 동생을 용

서해라"며 울먹이는 전씨에게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있었구나"라는 말만 할뿐 더 이

상 말을 잇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전씨 가족들은 "이게 꿈이야, 생시냐"는 말을 연발하며 52년만의 상봉을 믿지

못하다가 나중에 현실로 인정한 듯 전씨를 의자에 앉힌 뒤 큰 절을 올린 데 이어 동

석한 분이씨의 남편과 동생 수일(65. 경북 영천시)씨의 부인과 아들을 소개했다.

전씨는 분이씨의 남편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큰 일을 하고 오셨습니다. 처남

반갑습니다"라며 큰절을 하자 손윗 처남으로서 아무런 역할을 한 게 없어 면목이 없

다는 표정으로 '됐다' '됐다'라며 절받기를 애써 거부했다.

전씨는 이날 가족상봉에서 막내 분이씨에 대한 관심이 유달랐다. "TV에서 나온

얼굴보다 좋다. 얼굴이 건강하게 보인다"는 분이씨의 말에 "이제 마음 푹 놓아라.

오빠가 업어주고 안아줄께. 이 오빠는 나약한 놈이 아니야"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뒤이어 남동생 수일씨가 부인을 소개하자 "내 군대 가기 전에 같이 놀았지"라며

회상했고, 수일씨는 "항상 형님 손잡고 이웃마을에 같이 놀러갔다"며 전씨의 군입대

이전 시절을 떠올렸다.

이들 가족은 이날 30여분간 면회하는 동안 카메라 기자들을 향해 잠시 포즈를

취한 것을 제외하고는 시종 눈물의 대화를 나눴다.

전씨의 누나 영목씨와 남동생 수일씨 부부와 아들, 여동생 분이씨 부부 등 6명

은 이날 오전 정부 관계자로부터 면회가 가능하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비행기편으로

상경해 눈물의 상봉을 했다.

검정색 모자와 반코트 차림의 전씨는 이날 국방회관에 도착하자마자 타고온 승

용차에서 혼자 내려 혼자 면회장으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갈 정도로 건강한 모습이었

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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