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학작품에 나타난 여성의 삶과 직업

한국문학사에서 이른바 제1세대 여성작가로 분류되는 나혜석의 '경희'에서 신세대 작가 정이현의 '트렁크'에 이르기까지 한국소설 속의 여성과 직업문제를 분석한 글이 발표됐다.

문학평론가 박혜경(44)씨는 계간 '문학과 사회' 봄호에 기고한 논문 '문학과 여성의 직업, 그 두 겹의 불화'에서 "문학 속에서 다루어지는 여성의 삶과 직업은 여성과 직업 사이의 불화뿐만 아니라 문학과 직업 사이의 불화라는 두 겹의 불화에 둘러싸여 있다"고 분석했다.

나혜석의 '경희'는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여학생이 직업과 결혼 앞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 소설에는 여성들의 삶 속에서 결혼과 직업이 갖는 의미가 뚜렷하게 암시돼 있지만, 여성이 일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사회에서 '제 손으로 제밥을 벌어 먹어야 하는 삶'이란 결혼하지 않은 여자에게 주어지는 천형이라고 필자는 설명했다.

이러한 의식은 직업을 가진 독신여성의 이미지를 왜곡시킨다.

대표적 사례로 현진건의 'B사감과 러브레터'의 주인공인 B사감은 남성 중심적 편견에 의해 극단적으로 왜곡된 여성의 전형적 모습이라고 필자는 덧붙였다.

필자는 "나혜석을 비롯해 1세대 여성 작가군에 속하는 김명순이나 김일엽 등에게서 사회적 마찰은 성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방식으로 나타난다"면서 "이들은 가부장적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여성의 삶을 추구하면서도 여전히 결혼이나 연애문제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남성이라는 타자를 여성적 자아실현의 중요한 매개로 간주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직업을 여성의 사회적 자립의 척도로 바라보는 작품들을 한국 소설에서 거의 찾아 볼 수 없다"고 필자는 잘라 말했다.

직업을 가진 여성이 등장하는 작품에서도 작가의 주요 관심사는 직업 그 자체보다 거기서 파생되는 애정문제 등 인간관계에 쏠려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광수의 '사랑'에 등장하는 석순옥은 간호사이지만, 그녀가 간호사가 된 것은 오로지 존경하고 사랑하는 안빈 박사를 좀더 가까이 모시려는 이유에서다.

1990년대에 들어 성우, 방송작가, 잡지사 기자, 교수, 컴퓨터 디자이너 등 전문직 여성들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그들에게서 직업에 대한 적극적 자의식은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필자는 지적했다.

신경숙, 공지영, 전경린, 배수아 등의 작품에 등장하는 직업있는 여자들의 대부분은 정서적으로는 거의 무직의 심리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배수아는 1995년 발표한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에서 "나는 정말로 내 모습이 싫었다.

서른 네 살의 직업을 가진 독신여자, 이런 모습으로 내가 있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구절을 통해 직업에 대한 적대적 심리마저 드러냈다고 필자는 지적했다.

필자는 박완서의 '살아 있는 날의 시작'이나 '서있는 여자', 최근작인 정이현의 '트렁크' 등에서 직업적 성취욕이 강한 여성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매우 배타적이거나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왜곡되고 파탄의 상태를 보여준다고 적었다.

결국 한국소설속의 여성들은 직업에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이거나 혹은 직업이 있더라도 이기적이고 왜곡된 자기성취 욕구에 사로잡힌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이는 남성작가들의 작품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문학과 직업사이의 불화에 덧붙여 여성의 삶과 직업 사이의 불화가 이중으로 겹쳐 일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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