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현장>경산 대학가 원룸 '바겐세일'

"원룸도 방을 세놓으려면 앉아서 기다릴 수 없어 길거리에 나와 호객 행위를 해야 할 정도입니다".

700여채의 원룸이 들어서 거대한 '원룸촌'을 이루고 있는 영남대 경산캠퍼스 정문 앞 임당.조영동 일대. 요즘 이곳 골목길을 걸어가면 아주머니들이 다가와 말을 건다.

"방 구해요?", "잘 갖춰진 방 있어요"라고. 이를 보고 주변에서는 농담삼아 "마치 xx마당(윤락가)에서 호객행위하는 것 같다"고 한다.

▨원룸도 '호객행위'를 해야 나갈 정도=포스코에 근무하는 남편 때문에 포항에 살고 있다는 48세 아주머니. 그녀는 남편의 퇴직금 중간정산제를 하면서 받은 돈 등 4억6천여만원을 투자해 3년 전에 18개의 방이 있는 원룸을 구입했다.

"요즘 원룸을 보증금 50만원에 월 15만원, 투룸은 100만원 보증금에 월 25만원을 받고 있다.

방이 별로 나가지 않아서 벌써 10여일째 낮시간부터 방을 세놓기 위해 길거리에 나와 직접 학생들에게 접근한다"고 했다.

▲대로변서 학생잡기

20개의 방이 있는 원룸 주인인 또다른 50대 아주머니는 "작년만 해도 10~12개월 계약이 기본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6개월짜리 사글세 계약을 하려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경제사정이 어려워 한꺼번에 목돈이 드는 것이 부담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즘 원룸촌 골목길마다 집주인들이 나와 원룸 세놓기를 선전하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을 정도다.

부동산중개업소에서도 '삐끼' 아주머니들을 고용해 길거리를 지킨다.

심지어 대로변 입구에서 차량을 타고 대기해 있다가 손님이 나타나면 차에 태워서 입맛에 맞는 원룸을 소개해 준다.

부동산 중개업소에서는 요즘 학생 고객에게는 중개 수수료를 받지 않고 집 주인에게만 받을 정도다.

원룸 주인들은 "작년만 해도 호객행위는 상상도 못했다.

예전에는 전화만 받고 계약했지만 올해는 앉아서만 기다렸다가는 방을 세놓을 수 없어 이렇게 나와 있다"고 했다.

이같은 현상은 비단 영남대 주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구대 주변인 진량읍 상림.부기.평사리 일대와 하양읍 일대 원룸촌도 마찬가지다.

골목마다 아직도 방을 세놓지 못한 집주인들이 나와 학생들을 직접 '모시고' 가서 세를 놓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목격할 수 있다.

▨가격이 싼방, 룸메이트 구함=대학가 원룸촌의 가격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위치에 따라, 언제 지었느냐, 방안에 냉장고.가스레인지.인터넷전용선.에어컨.공동세탁기.책상.침대 등 어떤 '옵션'을 골고루 갖추었느냐에 따라 다르다.

보증금없이 월 7만~8만원하는 한옥부터, 보증금 30만~50만원에 10개월 사글세 300만~350만원하는 최신식 호텔급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대구대 주변인 상림리에서 원룸을 직접 건축해 임대하는 이창우(42)씨는 "작년만 해도 많은 학생들이 가격에 관계없이 지은 지 얼마 안되고 소위 '옵션'을 골고루 다 갖춘 비싼 방을 찾았지만 올해는 싼 방과 부담이 덜 되는 2인1실을 찾는 학생들이 많다"고 했다.

▲어려운 경제…싼방 찾아

같은 학교에 입학하는 여동생과 함께 살려고 원룸을 얻었다는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3학년 김미정(22.여)씨는 "원룸 세가 워낙 부담스럽다보니 주변의 많은 친구들도 룸메이트를 구하고 있다"고 했다.

한옥부터 원룸까지 20년 넘게 영남대 학생들에게 셋방을 놓고 있다는 이모(62.여.경산시 대동)씨는 "올해처럼 방 세놓기가 어려운 해는 없었다"며 "싼 방을 찾으면서도 요구조건은 엄청나게 까다롭다"고 말했다.

대구대 3학년 정은숙(22.여)씨는 "보증금 10만원에 사글세 120만원 등 130만원에 상림동 원룸에 기거하고 있는데 혼자 생활하기도 외롭고 방값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학교 인터넷 게시판에 '룸메이트 구함' 광고를 냈다"며 "둘이서 방을 쓰다보니 비용부담이 크게 줄었다"고 했다.

"방 세 얻는데 부담이 돼 학교 인터넷에 '룸메 구함' 광고를 내어 120만원(10개월)짜리 방을 후배와 함께 얻어 생활하고 있다"는 대구대 회계정보학과 4학년 정재윤씨. 어려운 경제사정을 반영한 듯 요즘 대학 인터넷 게시판에는 이처럼 '룸메 구함'이라는 광고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빈방이 많고 가격은 하락=경산 대학가에 원룸이 건축된 것은 10여년 전부터. 하양읍 주변에서 한집 두집 짓기 시작한 이후 지난 99년 영남대 건너편 임당택지개발지구 개발이 완료된 이후 최근 몇년 동안 '원룸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은행권 이자가 싸면서 많은 사람들이 원룸을 신축해 월세라도 빼먹는 것이 낫다고 판단,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경산시 임당.대동.조영.삼풍동 등 영남대 주변에 약 900여채. 진량읍 상림.부기.평사리 등 대구대 주변에 200여채. 하양에 300여채 등 경산 관내에 1천700~1천800여 채의 원룸이 건설됐다.

원룸 1채당 평균 15개의 방이 있다고 보면 2만5천~2만7천 여개의 방이 있는 셈. 그야말로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거대한 원룸촌을 형성하고 있다.

최근 들어 대학가 원룸은 고급화됐다.

옵션을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제대로 세를 놓을 수 없어 경쟁적으로 새 집을 짓고 각종 시설을 갖추게 됐다.▲

평균 10~20%는 빈방

임당동에서 5년째 공인중개사를 하고 있는 김영진(55)씨는 "영남대 주변 원룸은 공급 포화상태"라고 했다.

"작년만 해도 IMF사태 이후 휴학을 했던 많은 학생들이 대거 복학하면서 원룸이 잘 나갔다.

따라서 너도 나도 많은 사람들이 원룸을 건축했다.

하지만 올해는 경기침체 등의 영향으로 2인 1실을 찾는 등 공급에 비해 수요가 크게 줄어 자연히 빈방이 많아졌다"고 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평균 공실율(空室率)이 10~20% 정도는 될 것이라고 봤다.

"원룸 세는 10% 정도 떨어졌는데도 빈방은 오히려 더 늘어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김남환씨. 원룸 관리.임대업을 하는 그는 요즘 학생들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중개수수료를 받지 않고 집 주인에게만 받는다고 했다.

대구대 주변 원룸 주인 이창우씨도 "몇년 전만 해도 은행 이자가 싸니까 많은 사람들이 2억~4억원 정도 투자해 원룸을 신축했다"며 "이때부터 공급 과잉이 되면서 빈 방이 15~20% 정도 될 것"이라고 했다.

빈 방으로 놀릴 수 없으니 자연히 가격을 싸게 해서라도 세를 놓을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원룸 가격은 떨어지게 마련. 김영진씨는 "가격이 다소 차이가 있지만 작년 신학기때보다 10~15% 정도 떨어졌다"고 했다.

영남대 주거정보센터 박정애(26.여)씨는 "원룸촌이 상당히 고급화됐지만 오히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아 가격이 작년보다 10% 이상 떨어졌다.

빈방도 많이 늘어 한옥집은 세 놓기 힘들다"고 했다.

당분간 대학가 원룸촌은 수요에 비해 급증한 공급으로 인해 빈방이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또 임대 가격의 하락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경산.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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