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참 가난한 사람이 살았어. 가난해도 보통으로 가난한 게 아니라, 하루 한 끼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고 누더기 홑옷으로 한겨울을 나는 형편이야. 아무리 부지런히 일을 해도 살림이 나아지지 않으니까, 이 사람이 어디서 듣기로 옹기장사 이문이 많이 남는다는 말을 듣고는 옹기장사를 시작했어. 이웃에 다니면서 어찌어찌 빚을 내다가 옹기전에 가서 옹기를 샀지. 장독도 사고 동이도 사고 항아리도 사고 자배기도 사서, 이것을 지게에다 차곡차곡 쟁여 실었어. 그러고 나서 이걸 등에다 불끈 짊어지고 팔러 나섰지.
옹기짐을 짊어지고 가다 보니 어느 바닷가 마을에까지 가게 됐어. 고개만 넘으면 마을인데, 마침 숨도 차고 다리도 아프고 해서 고갯마루에서 지게를 벗어 놓고 잠깐 쉬었지. 그런데, 아 이런 변이 있나. 때맞춰 회오리바람이 쌩 하고 불어오더니 그만 세워 놓은 옹기짐을 담쏙 휘감아다 패대기를 치지 뭐야. 뭐 손쓸 겨를도 없어. 눈 깜짝할 사이에 피 같은 옹기가 땅바닥에 흩어져 산산조각이 나 버린 거야.
이 사람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참 억장이 무너지거든. 빚을 내어 산 옹기를 하나도 못 팔아 보고 몽땅 부서뜨려 놨으니 말이야. 땅을 치며 울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럴 게 아니라 관가에 가서 하소연이나 한번 해 보자, 이런 생각이 든단 말이야. 아 밑져야 본전 아닌가.
그래서 이 사람이 곧장 관가로 갔어. 가서 원님에게 하소연을 했지.
"사또, 일이 이러이러하게 돼서 피 같은 옹기를 다 잃었습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그런데 이 고을 원님이 참 똑똑했나 봐. 가만히 하소연을 들어보니 형편이 참 딱하거든. 어떻게 하면 저 불쌍한 옹기장수를 도와줄까 하고 궁리하다가 좋은 생각이 나서, 얼른 사령들에게 명령을 했지.
"너희들은 어서 바다로 가서 동쪽으로 가는 배와 서쪽으로 가는 배를 찾아 그 임자를 각각 데려오너라".
당장 사령들이 달려가 배 임자 둘을 불러다 동헌 뜰에 세워 놨어. 그러니까 원님이 배 임자들에게 물었어.
"동쪽으로 가는 배 임자는 들어라. 오늘 어떤 쪽으로 바람이 불라고 빌었느냐?"
"그야 동쪽으로 바람이 불라고 빌었지요".
"그러면 서쪽으로 가는 배 임자는 어떤 쪽으로 바람이 불라고 빌었느냐?"
"그야 서쪽으로 바람이 불라고 빌었지요".
원님이 무릎을 탁 치면서 판결을 하는 거야.
"이제 보니 저 옹기장수의 옹기짐을 넘어뜨린 것은 너희들이로구나. 한 사람은 동쪽으로 바람이 불라고 빌고, 한 사람은 서쪽으로 바람이 불라고 비니까 회오리바람이 분 게 아니냐? 회오리바람 때문에 옹기짐이 넘어졌으니, 너희들이 옹기값을 물어주도록 하여라".
배 임자들이야 돈이 많으니 옹기 값쯤 큰 짐이 될 리는 없거든. 그렇지만 옹기장수한테는 옹기 값이 전 재산이나 다름없잖아. 그러니 부자들 도움을 받아 가난한 사람 좀 도와주자는 게 원님 뜻이었지. 어쨌든 원님의 판결 덕분에 옹기장수는 옹기 값을 받아서 그 돈으로 다시 장사를 시작했는데, 그 뒤로 장사가 어찌 잘 됐는지 금세 부자가 돼서 잘 살더라네. 서정오(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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