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건강한 가정의 조건

얼마전 일요일 저녁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남편과 나는 동네의 호숫가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

그곳 빈터에서는 작은 연주회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는 발길을 멈추고 걸터앉을 곳을 찾아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마이웨이를, 아, 대한민국, 몽금포타령을 들었다.

연주의 수준을 떠나서 야외의 소음 대신 화음을 듣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연주하는 이들이 남녀노소 섞인 것이 더욱 신선하고 보기 좋았다.

머리기 희끗희끗한 아저씨도 아주머니도, 청년 남녀들과 고등학생, 중학생 오빠와 언니, 초등학생, 고사리 손에 하모니카를 들고 부는 유치원 꼬마도 있었다.

어느 종교단체의 월례 야외 연주회였는데 그 가족적인 분위기가 일요일 저녁을 한껏 푸근하고 여유롭게 하였음을 누군가 그 아이디어를 내고 계획했을 이에게 감사하고 싶었다.

가정의 달 오월도 지났다.

정신없이 많은 기념일 중에 또 최근에는 부부의 날까지 추가되었다.

도의가 땅에 떨어진 시대에 도의가 소리높이 외쳐지는 것과 같이 가족의 위기라고 이야기되는 이 시대에 어린이날, 어머니날, 아버지날, 성년의 날에 이어 부부의 날까지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연령대를 막론하고 쉽게 이혼하는 것과 더불어 가정의 두 개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건축자인 부부 결속의 중요성이 재인식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가족도 친족관계망이나 제도로 보장되던 가족에서 이제는 부부 두 사람의 신뢰와 애정적 유대에 기반하지 않고는 유지되기 힘든 우애적 가족으로 변화하고 있고 또한 변화해야 함을 말해준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이혼율 급증, 출산율 저하, 60, 70년대 신문지면을 단골로 차지했던 가족동반자살의 재등장 등은 최근 우리 사회의 급격한 사회 경제적 변화의 직접적 산물이다.

IMF 경제위기 후 이혼율이 가파르게 상승하였고 청년실업의 증가로 결혼연령이 늦어지면서 출산율 또한 낮아지고 있으며 신용불량자의 양산과 가계파산으로 다시 가족동반자살이 늘고 있다.

가족은 굳건하게 항상 그대로 있으면서 사회의 충격을 막아낼 수 있는 완충장치도 든든한 보루도 아니다.

사회의 변화하는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적응해가야 하는 조직체일 뿐이다.

가족을 그대로 놓아두어도 그 구성원들이 알아서 잘 해 나갈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이제는 가족을 지원하고 강화시켜 사회적 스트레스에 대처해 나가도록 하는 적극적인 가족정책이 필요한 때이다.

그래서 지난 연말에 건강가정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일부에서 이 법에 대한 오해는 건강한 가정 만들기를 마치 기존의 전통적인 가족을 유지하려는 시도로 보려는 것이다.

오늘날 건강한 가정의 개념은 부부와 자녀 등 가족구성원이 모두 존재하는 가족이나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생활공동체로서의 가정, 사회변화에 따라 출현하는 다양한 가정형태, 즉 한부모 가정, 재혼가정, 집단가정을 포괄하여 그 구성원들이 상호 애정적 유대감 속에서 어느 한 사람도 희생됨이 없이 잘 기능하는 가정을 말한다.

며칠 전 서울에서 열린 건강가족에 대한 국제학술대회에서는 건강가정의 요소로 친밀감, 결속력, 위기관리능력을 갖춘 가정으로 들었다.

건강가정지원법에 따라 내년부터 각 시도에 개설되는 건강가정지원센터가 우리 사회의 건강한 가정을, 그리고 건전한 생활문화를 조성해 가기를 기대해본다.

유가효 계명대 가정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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