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詩와 함께 하는 오후

땅거미 내려오네

지분지분 분꽃만 피어오르네

책가방 마루에 던져놓은 지도 오래

엄마가 안 와 텅 빈 마당

저 홀로 여문 씨앗 내뱉는

새까만 꽃밭

백미혜 '들꽃소묘2'

고요의 남쪽에 분꽃 네 포기를 심었다.

분꽃은 들꽃이 아니다.

책가방 둘러메고 십리 산길 넘어 집에 왔을 때, 밭에 가신 엄마 땅거미 내리도록 오지 않을 때, 장에 가신 우리 엄마 해지도록 안 오실 때, 텅 빈 마당이 내 마음일 때, 지분지분 피는 꽃이 내 마음일 때, 내뱉는 씨앗이 내 마음일 때, 마침내 온 세상이 새까만 꽃밭일 때 분꽃은 들꽃이다.

만상(萬象)은 버려져 홀로 피는 들꽃일 뿐이다.

비가 잦아서인지 분꽃 네 포기가 다 살았다.

저 혼자 텅 빈 마당가에 쓸쓸할 테니 들꽃 향기 짙은 꽃이 피리라.

강현국(시인.대구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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