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하늘이 맺은 인연 피보다 진한 사랑

한 할머니의 손녀사랑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정구 국가대표가 되고 싶어요!"

23일 오후 2시 동구 신천1동 동보한방병원 501호 병실. 아무도 보살펴 주는 사람이 없는 이정아(9.종로초교3)양과 7가지 질병을 앓고 있는 이순덕(69) 할머니가 서로 꼭 끌어안은 채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정구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철없는 소녀 정아는 학교수업이 끝나자마자 곧장 할머니를 만나러 병원으로 달려갔다.

위출혈과 위염, 식도염, 골다공증, 골관절염, 갑상선저하증, 요추압박골절 등 7가지 병을 한 몸에 가지고 있는 일명 '종합병원'인 이순덕 할머니는 정아가 오자 얼굴이 환해졌다.

아픈 몸을 겨우 가눈 할머니는 "정아는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아이"라며 "아무 데도 의지할 데 없는 손녀를 두고 절대 죽지 않겠다"고 약해진 의지를 다잡으며 삶에 대한 의욕을 태웠다.

그러나 정아양이 어깨를 주무르며 할머니 볼에 대고 얼굴을 비비자 할머니의 슬픈 눈물은 봇물처럼 흘러내렸다.

'이 어리고 철없는 것이 제 할머니 없이 혼자서 어찌 살아갈꼬?' 이 할머니의 한숨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정아양은 "할머니, 울지마! 부끄럽잖아!"라며 오히려 할머니에게 핀잔을 줬다.

이렇듯 두 사람이 피보다 진한 관계로 발전한 건 4년전 일이다.

2000년 봄. 할머니의 친아들이 사업실패로 쫓기는 몸이 되면서 양녀로 데려온 정아양을 두고 멀리 가출해 소식조차 알 수 없게 된 것.

때문에 할머니는 모든 재산을 날려 버리고 빚만 떠안은 채 정아양과 함께 대구역 반대편 교동시장 내 2평 남짓한 사글세 단칸방으로 옮겨와 이제껏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할머니는 정아양의 학비마련과 생계유지를 위해 식당일과 들이나 밭에서 하는 잡일 등을 마다하지 않았다.

몸이 조금씩 아파왔으나 병원갈 생각조차 못했던 할머니는 올해 초 허리가 너무 아파 병원을 찾았다 '각종 질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키 125cm, 몸무게 25kg의 '나의 작은 거인 정아'가 곁에 있어 행복하다"며 울음 속 웃음을 지었다.

한편 정아양은 학업보다 정구에 관심이 더 많다.

같은 학년 남자선수보다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고 있으며 팔힘도 반에서 남녀 통틀어 두번째로 손꼽힐 정도. 정아와 둘도 없는 친구라는 현철(9)군은 "정아는 코트에서 정구공을 치거나 운동장에서 달리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며 "가장 갖고 싶어하는 것도 '정구라켓'"이라고 귀띔했다.

현재 정아양과 할머니는 지난 4월부터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선정돼 정부로부터 매달 30여만원을 받고 있는 것이 수입의 전부. 경제적으로는 모질도록 힘든 삶의 연속이지만 두 사람은 하늘이 맺어준 인연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 핏줄보다 진한 두사람의 사랑은 찜통 폭염보다 더 뜨거운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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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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