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느 중앙일간지는 여성단체에 대해 선정적인 공격을 시작하였다.
영화포스터의 반라상태 여배우 몸에 박근혜대표의 얼굴을 합성한 패러디가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에 초기화면으로 게시된 사건과 관련하여 특정한 여성단체를 4회에 걸쳐 공격하였다.
이 패러디에 대해 즉각 비판적인 입장을 내지 않은 점이 바로 여당에 대한 정치적 편향성 때문에 의도적으로 함구한 것이라는 해석과 함께.
이런 기사를 대할 때마다 여성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우울함과 비애를 느낀다.
이런 기사에서 발견되는 가장 큰 문제점은 나열하는 사실 자체가 왜곡되거나 객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가 배워 온 언론의 역할은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왜, 어떻게 라는 6하 원칙을 명확히 지키는 것이다.
이런 언론들은 국민에게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면서, 국민을 선동하려 한다.
사실 위주의 나열과 가능하면 해석을 삼가는 서구의 언론들을 대할 때마다, 나는 그들의 민주주의 성숙도를 확인하며 부러움을 느끼곤 한다.
여가활동단체조차 통제되었던 군부독재시절에 시민단체라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었다.
고작 위로부터 조직된 관변단체들이 있었고, 이들은 갖가지 관제시위에 동원되기 일쑤였다.
지난 십 여 년 사이에 시민단체가 괄목할 만하게 성장하였고, 이제 정부든 기업이든 시민단체의 비판과 감시를 받게 된 것은 가장 자연스런 민주주의 발전이다.
그러나 기득권을 누리던 이들에게는 이런 감시와 견제가 거슬리는 일이다.
몇 년 전에 독일의 수상 슈뢰더가 '사회의 시민사회화'를 역설한 것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사회복지비용이 대폭 삭감되면서 바로 시민단체야말로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공익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인식하였기 때문이었다.
오랜 독일생활을 보낸 나에게 독일의 시민단체가 지닌 일상성에 기초한 활동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환경운동을 하는 내 친구는 실험도구가 갖추어진 007가방을 들고, 자신이 당번을 맡은 날에는 하루에 2번씩 도시 주변의 냇물을 찾아, 오염도를 측정하고 이를 그 단체의 그래프에 기재하곤 하였다.
이런 방식으로 주변 자연환경의 오염정도는 매일매일 측정되어 환경단체에 의해 결과가 발표되곤 하였다.
그러나 우리 시민운동은 아직 일회적인 행사나 활동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활동가와 재정부족에 기인한다.
독일은 정부가 시민단체에 대한 실질적인 평가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필요한 인원수에 따라 인건비를 지급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이들이 국가나 정부에 종속되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이에 비해 한국의 시민단체 간사들은 참으로 열악한 조건, 즉 과중한 노동과 형편없이 낮은 급료로 일하고 있다.
운동에 대한 헌신성이나 운동에 대한 의미부여가 없다면, 아마 한국의 시민운동은 존재하지 조차 못하였을 것이다.
지난 7월 독일에서 만났던 복흠대학의 사회과학부 학부장 렌쯔(Lenz)교수는 다른 나라에서 발견할 수 없는 한국 여성운동의 헌신성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또한 시민운동의 장점은 내부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다.
각각의 사안은 한 개인의 의견이기보다는 집단토론을 거치게 된다.
각 지역이나 각 분야의 개별단체가 토론을 거쳐 올라온 의견을 다시 모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의 여성단체가 박근혜 정치패러디에 대한 대응이 늦었던 이유는 내부적으로 그것이 '여성정치인에 대한 성희롱적인 패러디'라는 견해와 '패러디물의 표현의 자유'라는 양대 주장사이에 합의를 도출하기가 어려웠던 까닭에서였다.
이런 토론과정은 시민단체 안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사안마다 공론을 만들어 가는 데에 초석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시민단체가 헌신성과 내부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의사 시민단체나 질적 전환을 치르지 못한 관변단체가 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민주주의 발전에 초석이 되고있는 시민단체 전체를 스스로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매도하는 언론과 정치인들은 이제 스스로의 언행에 대해 부끄러워 해야한다.
정현백(성균관대교수.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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