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詩와 함께

멀리서 산책을 하다가도

의자를 보면 앉고 싶어진다

의자에는 항상 누군가의 체취가 묻어있다

한가한 오후 노부부가 쓸쓸함을 기대다 가고,

아이들이 실 웃음을 흘리다 가고,

그늘이 몰래 쉬었다 가고,

가끔은 석양도 붉은 하늘을 끌고 와 놀다 간다

늦가을 날

의자 위에 나뭇잎이 떨어져있다

가난한 죽음이다

죽음도 의자를 보면 쉬었다 간다

박재희 '공원벤치'

의자는 수성못 가에도 있고 달성공원에도 있다.

의자는 누군가 와서 앉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늘 그렇게 거기 있다.

의자를 보면 앉고 싶어지는 사람은 산책하는 사람, 그래서 참 넉넉한 사람이다.

시간 사냥에 바쁘고 속도와의 경쟁에 뒤질세라 여념이 없는 도시적 일상은 초록의 빈 터 같은 저 의자를 쓸쓸한 노부부에게, 석양에게, 나뭇잎에게, 죽음에게 맡겨버린 지 오래되었다.

의자를 보면 잠깐이라도 앉았다 가자. 각박한 세상사 등짐 잠시 내려놓고 소슬한 가을바람과 함께 쉬었다 가자. 느림의 미학만이 그대 삶을 풍요롭게 할지니! 강현국(시인'대구교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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