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스포츠기자석-지역 정서 맞는 코칭스태프 원한다

"보스턴 시민들이 불쌍하다.

" 미 프로야구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보스턴 레드삭스가 뉴욕 양키스에게 초반 3연패를 당했을 때 TV중계를 같이 보던 누군가로부터 들은 말이다.

연고지 팀인 레드삭스가 '밤비노의 저주'에 시달리며 번번히 양키스의 제물이 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기도하는 심정으로 온 정성을 다해 응원하는 보스턴 시민들이 '희생양'처럼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올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를 지켜보면서 삼성라이온즈를 응원하는 대구 야구팬들도 불쌍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야구가 하나의 '종교'로 자리잡은 미국처럼 시민 전체를 야구팬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상당수 대구시민들은 삼성의 패배에 아쉬워 했을 것이다.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미디어리서치의 조사 결과 한국시리즈 승부가 결정난 9차전의 전국 시청률이 14.9%였지만, 대구지역 시청률은 20.0%로 전국 최고였다고 한다.

특히 보스턴 시민들이 86년간이나 이어져온 저주를 풀고 레드삭스가 월드시리즈 정상에 서는 모습을 지켜본 뒤라 대구시민들의 아쉬움은 더욱 컸다.

레드삭스가 우승 축하 퍼레이드를 하는 날에는 320만명의 보스턴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박수를 보내며 우승의 기쁨을 나눴다고 전해졌다.

삼성이 우승했다면 대구에서도 멋진 카퍼레이드가 마련됐을 것이고 어려운 경제때문에 멍이든 시민들도 거리로 나와 환호했을 것이다.

하지만 삼성이 레드삭스처럼 시민들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야구팬들의 심정을 더 많이 헤아려야 할 것같다.

그 중 하나는 대구 야구팬들이 김응룡 감독과 선동열 수석코치 등 코칭스태프에 대해 갖고 있는 반감이다.

삼성이 누구와 함께 우승하느냐는 큰 관심사가 되지 않겠지만 대구 야구팬들에겐 중요한 문제다.

김 감독과 선 코치가 누군가.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 길목에서 늘 발목을 잡았던 해태(현재 기아)의 일등공신들이다.

'우승 청부사'라는 필승카드로 영입한 김 감독이 만족할만한 성적만 냈다면 이런 얘기는 묻힐 수도 있다.

2001년 부임한 김 감독은 지난 4년간 한 차례 우승을 일궈냈다.

뒤집어보면 3차례나 우승에 실패한 평범한 성적표를 남기고 있다.

김 감독이니까 2002년 삼성의 숙원인 한국시리즈를 제패할 수 있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만약 다른 감독에게 5년 계약에 4년의 기회를 줬다면 우승을 못 일궈냈을까. 김 감독 이전에 우승하지 못하고 쫓겨난 감독들은 하나같이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할 것이다.

한국시리즈가 끝나자 마자 코칭스태프가 도마 위에 오르는 것도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김 감독이 욕심을 버리고 선 코치에게 감독직을 물려준다는 식의 일부 언론 보도는 한참 잘못됐다.

삼성은 원점에서 코칭스태프 개편 작업을 해야 하고 대구 연고지 출신의 감독 후보들에게도 김 감독, 선 코치가 누린 만큼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수십년간 우승하지 못해도 레드삭스처럼 변함없이 성원하는 시민들이 있는 프로야구팀이 바로 성공한 구단이다.

김교성기자 kgs@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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