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신화(神話)의 땅 아테네에서 일군 6연패 '양궁신화'의 감동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그때 금'은메달을 목에 건 박성현'이성진양은 인터뷰 기자들이 승리의 요인을 묻자 열심히 땀흘린 보람, 정신력을 이야기 했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들이 그때에 덧붙여서 "원래 우리 조상들은 활 잘 쏘는 기마민족이었어요. 옛날 만주땅에 나라를 세웠던 우리 고구려의 장수 양만춘이 중국 당나라 태종이 쳐들어왔을 때 그 눈을 쏘아 당군을 패주시킨 역사도 있지요…"했더라면 참으로 금상첨화, 이들의 민간외교는 100점짜리가 됐을 것이다. 때마침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양국간 심각한 외교문제로 번질 참이었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 글자 하나는 그래서 엄청 중요하다.
이미 제기된 문제이긴 하나, 이 '고구려'를 영문으로 쓰면 Koguryo일까 Goguryeo 일까? 교육부와 외교부, 국정홍보처'문화재청, 코리아 헤럴드는 현행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른 G-를 쓴다. 고구려 연구재단과 코리아 타임스, 유네스코'세계유산위원회와 중국'북한'브리태니커 사전에선 K-를 쓴다. 외국사람들의 입장에선 K-와 G-는 완전히 별개의 나라다. 명칭통일의 필요성은 자명하지만 이게 문화부 소관인지 행자부, 국사편찬위원회 소관인지 책임소재부터도 확정된 바 없다.
미국에서 노무현 대통령 영문이름 석자는 지난 연말에야 겨우 ROH Moo-hyun으로 수정됐다. 그때까진 계속 NO Mu-hyun이었고 'President NO'였다. 주미 한국대사관이 미국 CIA에 1년이상 거듭 요청한 다음에야 얻어낸 쾌거(?)다. 1980년 11월 영화배우 Ronald Reagan은 대통령에 당선되기 직전까지는 '로널드 리건'이었다. 미국은 그가 40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마자 '레이건'으로 바꿔줄 것을 요청했고 그때 대한민국 모든 신문과 방송은 즉시 '레이건'으로 바꾸었다. 그걸 미국 CIA는 1년이상 질질 끌었다. 이것도 국력의 차이인가.
그러나 잘못을 따져들면 남 나무랄 일이 아니다. 2000년 7월 문화부 고시 제2000-8호에 의거, 정부가 Kimpo를 Gimpo로, Taegu를 Daegu로 바꾸는 등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을 개정하긴 했으나 회사'단체'인명은 기왕의 표기방식을 계속 쓸 수 있다고 군더더기를 붙여 놓은 채 지금껏 어물어물, 영문표기법을 통일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들 '엿장수 맘대로'다. 박찬호는 Park인데 박세리는 Pak이다. 구(具)씨는 Koo/Ku/Goo/Gu, 즉 4개의 영문자 성을 갖고 있다. 하기야 나라 이름도 Korea랬다가 Corea 랬다가 왔다리 갔다리 하니 더 말할게 없다.
지금 대구시내에 나가보면 도로표지판의 지명(地名) 영문표기도 뒤죽박죽이다. 경북도청과 경북테크노파크의 경북은 Kyong buk, 경북대병원의 경북은 Kyong pook이다. 경북체고는 Gyeong buk, 경북외대는 Kyung buk이다. 전부가 따로국밥이다.
중앙로의 '중'은 Chung인가 Jung인가, 반월당은 Panwoltang이 맞나 Banwoldang이 맞나? 대명동은 Dae myoung, Dae myung, Dae myong중 어느 것인가? 직접 '길거리 체험'을 해보시기 바란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곳곳에서 헷갈린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이런 것 하나부터도 엉터리요 무책임이다.
그렇다치고, 이런 엉터리 영어표기법 때문에 당장 개인들의 이해관계가 불거지는 문제도 있다. 바로 여권발급 등 출국관련 서류를 뗄 때 부닥치는 영문 표기의 혼란과 그에 따른 피해다. 예를 들어 내이름 '강 건태'의 '건'은 Keon인가 Kun/Kon인가. '강'과 '건'의 기역 자(字)는 둘다 K인가 G인가, 아니면 K와 G 혼용인가. 국세청에서 발급하는 영문(英文) 소득금액증명원과 구청의 영문 재산세 증명원, 그리고 여권과 명함의 영문이름이 같게 돼 있는지를 확인하지 않으면 까딱 나중에 큰 낭패를 보는 수가 있다. 재작년에 미국갈 때 영문이름을 어떻게 썼더라? 까먹지도 말아야 한다.
개인의 영문이름이야 본인이 구술해주고 챙기면 된다지만 영문(英文)의 지명'주소 표기는 공공기관의 책임문제가 따른다. 한 예로 대구시 남구 대명동의 '명'은 Myung도 쓰고 Myong도 쓰고 Myoung도 쓴다. 구청마다 동사무소마다 관공서 컴퓨터에 입력된 영문지명이 제멋대로들이기 때문이다. 따져보지 않고 그냥 돌아섰다가는 까딱 '두번 걸음' 할 수가 있다. 이리되면 민원인들은 짜증이 난다. 왜 짜증이 나야하는가, 왜?
강건태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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