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자루에 든 좁쌀이 자르르 쏟아지는 것처럼

어둠의 현이 심금을 울리는 장중한 악음처럼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저 함성처럼

촛불 켜들고 거리에 선 사람들

-내/가/여/기/한/알/의/모/래/인/간/인/것/이/자/랑/스/럽/다/!

외침 소리를 한 마디씩 분절해 놓으면 이렇게 되겠지만

말의 뒤에 숨은 뜻이 말의 단순 합산 이상인 것은

말과 소리와 빛이 한 덩어리로

겨울 하늘의 현을 뜯어놓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배창환 '촛불 시위'

얼어붙었던 겨울 하늘의 현을 뜯어놓고 간 촛불시위, 그 순수한 열정을 다시 읽는다.

'자루에 든 좁쌀이 자르르 쏟아지는 것처럼'의 비유가 좋다.

' 하루 이틀 먹어온 쌀이 아닌, 그 쌀의 힘들이 뭉쳐져서 거리로 뛰어나간 적이 있었다.

-내/가/여/기/한/알/의/모/래/인/간/인/것/이/자/랑/스/럽/다/!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시위에 참석해서 뿌듯했는가를 보여주는 개인적 반어적 독백이면서, 또한 사람들의 밀집을 // 표시로 형태적 효과까지 주고 있다.

그러면서 개인과 군중, 언어의 분절과 합산의 의미로 그날 아름다웠던 촛불시위의 힘을 생각게 하는 언어가 잘 절제된 새로운 민중시라 하겠다.

박정남 (시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