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대체 여긴 지, 저긴 지 종잡을 수가 없구먼. 변해도 너무 변했어."
지금부터 45년 전이다.
1960년에는 갓 쓰고 곰방대 담배 피던 고무신 할아버지가 있었다.
중절모, 한복 바지에 구두를 촌스럽게(?) 신은 아저씨도 쉽사리 볼 수 있었다.
조무래기 아이들이 냇가에 돌을 던지며 놀았다.
손으로 직접 쓴 듯한 삐딱간판이 걸려있었다.
오래 헤매다닌 끝에 옛 사진 속의 현장을 찾아냈다.
양 옆으로 솟은 두 개의 전봇대를 빼고는 그 자리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변해 있었다.
그나마 옛날 사진의 한가운데 조그맣게 남아있는 '옥산메리야스공업사'라는 간판이 현 위치를 찾아낸 유일한 단서였다.
허리춤에 손을 얹고 양말이 다 보이는 짧은 바지를 입은 그 때의 아이는 지금 서구 북비산네거리에서 달성네거리 쪽으로 향하는 왕복 6차로 한가운데에 서 있는 셈이다.
대여섯 명의 할아버지는 몇십 미터 앞으로 지나가는 경부선 기차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지지대 위에서 쓰러질 듯 버티고 서 있는 세탁소, 약방, 미용소 등은 보석방, 식당, 전자부품회사로 싹 바뀌었다.
"달서천이 복개되기 전 주민들은 만날 이곳으로 모여들었지. 엄마는 미나리를 씻었고 그 딸은 빨래를 했어. 사내애들은 물장구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지. 여기는 사람들이 모이는 쉼터이자 삶터였던 거야." 당시 경북여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장원식(76·현 서구문화원 이사·사진 제공)씨는 40여 년 전 추억에 잠겼다.
"그 당시 자전거로 통학하며 애들을 가르쳤는데 달서천 복개구간에는 삶의 군상들이 있었지. 넝마 동이도, 폐품장수도 이웃 간 정(情)이 있어 모두가 살 만했었지."
그 표정들을 간직하기 위해 사진기를 들었다는 장 할아버지. 차들이 씽씽 달리는 왕복 6차로의 한쪽에 우두커니 서서 말했다.
"그때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지?"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사진 : 1960년대 달서천 앞 풍경(위)은 요즘 아예 찾아볼 수 없다. 두개의 전봇대가 서있는 자리만 같을 뿐, 비슷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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