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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제발 한번만 말해봐"…모야모야병 앓는 이말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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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말 하는 거 한번만 들어봤으면 좋겠어. 내가 대신 아파줄 수 있으면 그래주고 싶어."

승경(10·여)이는 아빠의 볼을 비비며 '한번만 말해봐' '한번만 말해봐' 졸라대기 시작했다.

작년만 해도 노래 부르며 춤을 춰 보이면 아빠가 그 큰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줬었는데…. 이제는 보고 듣는 것 말고는 감정표현을 전혀 못하는 아빠가 얄밉기도 하지만 병원에 있는 동안만 봐줄 거라며 비좁은 병원 침대 한쪽, 아빠 옆에 또 눕는다.

'아빠 빨리 일어나서 우방랜드 가자'며 그 간절한 마음을 아빠의 손을 만져주고 배를 쓰다듬으며 전하고 있다.

"아빠가 얼마 전까지 코로 밥 먹었는데 이제는 입으로 먹어. 좀있다 일어날 것 같아요."

승경이 아빠 이말기(43·수성구 범물동)씨는 지난해 10월 뇌출혈로 병원에 실려와 수술을 받았다.

병은 곧 모야모야병으로 이어졌고 고혈압에 당뇨병이 연이어 찾아왔다.

모야모야병은 뇌 혈관이 좁아져 생기는 병인데 혈관 촬영시 뇌의 혈관이 마치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듯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씨는 선천성 혈관 기형이었다.

전 부인 김가영(38·가명)씨는 6년 전 이씨와 이혼했지만 쓰러졌다는 얘기를 듣고 다시 돌아왔다.

IMF, 사업 실패, 술 등으로 힘든 세월이었는데 남편은 자꾸 바깥으로만 돌았다.

그토록 미웠었는데 그만큼 사랑했던 것일까. 부인은 지극정성으로 이씨를 간호했다.

"남편이 앰뷸런스로 실려오면서 '우리 집사람한테 빨리 전화해'라고 중얼거렸대요. 입원 다음날 중환자실에서 30분간 면회했을 때도 내 앞에서 그 말만 되풀이하는거예요. 그렇게 속을 썩이더니 이렇게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고…. 그래도 일어나 함께 행복하게 살아야하지 않겠어요?"

판넬 장사를 하던 남편의 부도로 온 가족은 산 속의 오두막집에서 2년간 살았다

비가 오면 큰 통에 물을 받아 썼고, 겨울 추위에 군불하나 없었던 힘든 시절이었다.

옛 생각이 나는지 김씨는 한참을 울먹였다.

"참 많이 미워했는데 이제는 못해준 것만 생각하는 거예요. 그 단단하고 야무졌던 사람이 이렇다는게 정말 꿈같기도 하고…"

김씨의 아침은 비누칠로 남편을 목욕시키는 것으로 시작되고 하루종일 남편 곁에서 진을 다 빼면 하루해가 저문다.

짬이 나면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 애들 밥을 해놓고 청소를 한다.

중학생인 다경(14·여)이는 아빠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견딜 수 없어하는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내 목소리 듣고 눈을 깜빡이는 걸 보면 '살겠다' '이 사람 살겠다' 희망이 전해져오는데…. 돈없어도 건강하기만하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까지 아프면 애들이 고아 아닌 고아되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야죠."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매달 70여만 원을 받지만 남편의 기저귀, 물티슈, 화장지 등으로 그 절반을 쓴다.

애들 학용품에 집안 살림까지하면 병원비 댈 돈은 하나도 없다.

김씨는 다니던 식당일도 지난해 접었다.

둘째 승경이는 지난해 아파트 사람들끼리 연 축제에서 1등을 할 정도로 춤을 잘 춘다.

얼마전까지 '이효리'가 되는게 꿈이었다.

"이제 이효리 안하고 간호사 할거예요. 우리 아빠 간호할 거예요." 승경이는 얼른 아빠와 '팔공산 봄나들이'를 하고 싶다.

저희 '이웃사랑' 제작팀 계좌번호는 대구은행 069-05-024143-008 (주)매일신문입니다.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사진 : 승경이는 뇌출혈로 쓰러진 아빠가 일어나면 함께 우방랜드에 가는 꿈을 꾸고 있다. 이상철기자 find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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