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스승 함석헌 선생을 다시 만난다
KBS 1TV는 15일 밤 10시 '인물 현대사' 시간에 '씨알의 소리-함석헌'을 찾아나선다.
'민족의 큰 사상가', '우리 시대의 스승 함석헌' '거목(巨木)', '500년 후에나 제대로 이해될 수 있는 인물', '진정한 언론인' 등등. 함석헌을 두고 이르는 수사들이다.
그의 글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가 정치적 암흑기였던 1970년대 정권의 가혹한 검열과 탄압 속에서 발행했던 '씨알의 소리'. 이 작고 소박한 겉모습의 잡지는 함석헌의 분신이었다.
당시 검열로 인해 삭제되었던 원고를 공개하고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함석헌과 '씨알의 소리'를 다시 본다.
자유 정신과 저항 정신은 함석헌 씨알 정신의 핵심이다.
그의 일평생은 씨알을 억압하는 불의에 대해 저항한 기록으로 점철돼 있다.
1953년 '대선언' 이후 '사상계'에 발표한 글들을 통해 기성의 기독교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시작한 함석헌은 1950년대 이승만 정권과 1960, 70년대 박정희 정권에 대해 치열한 저항을 계속했다.
함석헌의 글과 행적은 이 땅의 많은 씨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한국의 민주화를 촉진시키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아본다.
저항하고 싸우되 비폭력 평화주의를 일관되게 외쳤던 함석헌. 함석헌 씨알 사상의 또 하나의 핵심은 비폭력 평화주의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1980년대 중반 운동권 일부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그의 비폭력 평화주의는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한국 현대사 속에서 그의 비폭력주의가 어떻게 구현되었고 그 진정한 시대적 의미는 무엇인가.
함석헌을 가까이서 지켜본 일부 사람들은 그 동안 그의 외면적 모습만이 아니라 내면의 모습까지 보아야 그의 진면목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저항과 민주화의 상징 인물로서의 함석헌, 그 이면에 존재하는 그의 내면 세계. 가족들과 아주 가까이서 따르던 지인들을 통해 이를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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