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댐 홍보관 뒤편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2km쯤 가면 안동시 와룡면 산야3리 속칭 '가티골' 마을이다. 한 골짜기에 한두 집씩 10여 가구가 사는 이 마을은 1973년 댐 공사가 시작되면서 댐 주변 주민들이 제일 먼저 이주한 곳. 진입로는 말 그대로 조로서도(鳥路鼠道). 지게를 지고 겨우 발을 옮길 수 있을 정도다. 집들도 흙벽과 슬레이트 지붕이 삭아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허름하기 짝이 없다.
마치 '개발시대'가 이 마을만 비켜간 듯하다. "댐이 들어선다고 해서 부랴부랴 산꼭대기로 이사 안 했나. 임시로 아무렇게나 지은 집인데 한해만 한해만 하고 산 지 벌써 30년이 넘었구먼." 봄비에 제법 불어난 마을 입구 개울가에서 미나리를 뜯고 있던 김노미(73) 할머니의 시선은 애써 오막살이집을 외면했다.
◇세월이 멈춰선 댐 주변
가티골 마을처럼 안동댐 주변 지역에서 보릿고개 당시의 생활수준으로 살고 있는 주민들은 모두 7개면 45개 리에 걸쳐 무려 2천20가구에 이른다. 댐이 들어선 직후 당국이 호수 수질과 경관보호를 명분으로 주변 241.38㎢를 자연환경보전지역으로 지정, 2중3중으로 개발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건물 증'개축과 보수, 신축은 엄두도 낼 수 없고 농사일도 30년 전 방식 그대로다. 제대로 된 길조차 없어 아직도 지게가 집집마다 필수품이고 경운기는 물론 리어카조차 필요없는 마을이 허다하다.
그나마 가티골 마을은 댐 홍보관까지 5리(2km)를 걸어가면 시내버스를 탈 수 있어 나은 형편이다.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와 예안면 태곡'부포리, 와룡면 도곡리 등지 독가촌 등 30여 개 자연부락은 뱃길이 끊어지면 시내 반대편으로 먼길을 돌아야 한다. 지금은 댐 착공 때 주변 자연부락을 연결하는 순환도로를 개설하지만 당시에는 일단 댐을 막고 보자는 식으로 무리하게 추진, 그 후유증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을이 호수에 둘러싸인 도산면 의촌리 이동훈(67)씨는 "댐이 생기고 난 후 길이 끊겨 갓 시집 온 새댁이 난산을 하다 병원에도 가보지 못하고 숨지기도 했다"며 "겨울철 얼어붙은 호수를 건너다 다친 사람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이 같은 실정을 감안해 수자원공사 안동댐관리단이 올해부터 마을을 순회하며 '사랑방 좌담회'를 여는 등 댐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으나 결과는 미지수다.
◇대통령 공약도 못 믿는다
1976년 10월28일 준공식이 열린 안동댐에는 허연 도포차림의 촌로들이 몰렸다. 일부는 박정희 전 대통령 일행을 향해 큰절을 올리기도 했다. 댐 준공 이후 호수변 곳곳이 관광지가 돼 살기좋아질 것이란 기대였다. 수몰이주민 한희숙(78'여'안동시 동부동) 할머니는 "끼니 걱정을 하던 때 막노동이라도 할 수 있던 댐 공사는 서민들에게 큰 보탬이 됐다"며 "안동댐이 지역개발로 이어질 것이라고 모두 철석같이 믿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밋빛 꿈은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여지없이 깨졌다. 안동시가 당초 정부에 건의한 10만여 평의 댐 주변 관광개발 계획 청사진과 조감도는 선거 때만 반복해 써먹는 공약(空約)이 돼버렸다.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약속한 안동지역 300만 평 국가공단 조성도 수질문제가 걸림돌이 돼 200만 평, 100만 평으로 쭈그러들다 결국 유야무야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중앙선 안동역사를 이전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단 한 뼘도 이뤄지지 않았다.
또 안동시가 1996년 수립한 성곡동 일원 유교문화권 중심숙박단지 개발계획(60만 평)도 환경부의 반대로 8년 만인 지난해 가까스로 승인을 받았다. 이에 앞서 90년대 초부터 추진한 임하댐 관광개발 역시 환경부의 제동으로 사실상 중단된 상황이다. 안동군수'시장뿐 아니라 대통령이 아무리 좋은 개발계획을 발표해도 하다 주민들이 시큰둥해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늘어나는 부담 멀어지는 지역개발
하지만, 안동시민들의 더 큰 걱정은 앞으로도 개발이 요원할 것이라는 데 있다. 청정지역 확대고시, 오염부하총량제에다 수변구역 지정 등 환경 삼중고(三重苦)가 눈앞에 닥쳐왔기 때문이다.
당장 오는 9월 낙동강특별법 유예기간이 끝나면 1차 수변구역인 임하댐 호수변 500m와 상류 20km까지 구역의 오'폐수배출 허용기준치가 BOD(생물학적 산소요구량), SS(부유물질) 20ppm에서 10ppm으로 각각 강화된다. 이에 따라 농산물 가공공장은 물론 축산시설과 식품접객업소, 숙박업, 목욕탕, 공동주택에 이르기까지 오'폐수 방류가 실험실 기준만큼이나 낮아지면 영세업체들은 사실상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또 지난 1월 발표된 환경부 고시에 따르면 현재 댐 주변만 해당되는 안동'임하댐 청정지역은 오는 2007년부터 거의 안동시내 전역으로 확대된다. 이 지역의 폐수관리 기준도 지금까지 '가'급 수준으로 1일 배출량이 2천t 미만일 경우 BOD와 COD(화학적산소요구량), SS의 기준치가 각각 80ppm, 90ppm, 80ppm였으나 2년 후부터는 40ppm, 50ppm, 40ppm으로 대폭 강화된다.
이미 자연환경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있는 안동댐 주변 유교권 중심숙박단지도 이 기준을 지키지 않을 경우 다 지은 건물이라도 사용승인이 나지 않는다. 호텔과 콘도, 골프장 등 아직도 민자유치 과정이 많이 남아 안동시청으로선 개발 의욕이 넘치지만 환경 걸림돌은 산 넘어 산인 셈.
더욱이 낙동강과 지류인 미천, 반변천의 오염원이 늘어나 오염부하총량제가 시행될 경우 지역개발은 더욱 환경문제에 발목 잡히게 된다. 아직은 수질이 평균 BOD 0.9ppm으로 목표수질 기준치인 BOD 1.4∼1.5ppm을 넘지않아 총량제 시행계획을 수립하지 않아도 되지만 수질이 떨어지면 안동시 스스로 폐수배출총량과 부하량을 줄여나가야 하는 것.
정수호(41) 안동 풍산농협 김치공장장은 "환경부가 수변구역 확대에 나설 경우 방류 전 폐수를 공장 넓이만한 오염 완충저류조에 가둬 둬야 한다"며 "폐수량을 강제로 줄여야 하는데 어떻게 생산을 늘리고 매출을 높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안동'권동순기자 pinoky@imaeil.com
사진: 안동댐 주변 마을 와룡면 산야 3리 속칭'가티골'마을. 허물어져가는 산골 오두막집으로 들어가는 길이 그 옛날 보릿고개 시절 지게 지고 다니던 길 그대로다.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