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보행자 사고 "차라리 중앙선에 서라"

도심의 밤 11시쯤, 무단횡단을 하던 보행자가 중앙선 부근에서 질주하던 자동차의 운전석 사이드미러에 부딪히면서 반대편 차도에 떨어져 즉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차도를 가로질러 건널 때 중앙선 부근까지는 거의 사고가 나지 않는다. 달려오는 차량이 있는지 확인하고 건너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앙선 부근에 다다르게 되면 사람들은 언제나 중앙선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반대편 차도에서 다가오는 차량을 보게 된다. 이것이 매우 위험한 사고를 낳게 한다. 차라리 황색의 중앙선을 밟고 기다리면 사고를 당할 확률이 적다. 사람들은 언제나 중앙선에 못 미쳐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다 뒤쪽에서 다가오는 차량을 아예 보지 않는다. 차도를 횡단하는 보행자 사고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일어난다.

우리나라의 보행자 교통사고 중 사망자는 2002년도에 인구 10만 명당 6.4명으로 선진국에 비해 10배나 많다. 왜 그럴까. 우리 국민이 선진국에 비해 교통질서를 더 지키지 않기 때문일까. 물론 차도를 횡단하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것이 안전한 일이다. 한 의과대 학생이 쓴 글이 생각난다.

"현재 우리나라의 제도와 법규를 바라보며 답답하다는 생각을 수없이 한다. 운전할 때 특히 유턴하고 싶을 때, 너무 답답하고 혹시나 경찰이 없으면 그냥 돌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그뿐인가. 저 멀리 까마득하게 보이는 육교와 지하도를 바라보며 무단횡단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고쳐먹은 것은 셀 수가 없다."

보행자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차량의 속도가 시속 60km가 넘을 때 사고자 10명 중 9명이 사망한다. 시속 48km일 때 10명 중 5명이 생존하며, 차량의 속도가 시속 30km 이하일 때는 10명 중 9명이 생존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도심의 차량의 속도가 시속 30km 이하를 유지하는 교통정책을 편다.

우리나라는 누구를 위한 교통정책을 펴고 있는가. 5분 빨리 차량을 질주하도록 하기 위해 선진국의 10배가 넘는 보행자를 살해하고 있는 셈이다. 말로만 노약자, 장애인 우선이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포스터를 여기저기 붙인다. 짐 많은 여행객이나 노인, 장애인에게 어떻게 육교나 지하도를 오르내리라는 것인가. 이렇게 보행자를 피곤하게 만들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는 홍보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률을 선진국 수준으로 줄이기 위해 우선 도심의 흉측스러운 육교부터 걷어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인도를 더 넓히고 차도를 더 좁혀야 한다. 차도를 건너가고 싶은 욕망을 줄이기 위해 횡단보도를 더 많이 설치해야 한다. 신호체계를 잘 구성하면 지금보다 훨씬 많이 횡단보도를 만들고도 교통흐름을 더 빨리 할 수가 있다. 도로교통시스템은 언제나 보행자 우선이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도심도 이제 선진국과 같이 '보행자 천국'을 만들 때이다.

채종민(경북대 의과대 법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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