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386의 책무는 제2의 민주화

우리나라는 문민정권 이후 계속되는 대립과 분쟁으로 10여 년 세월을 흘려보내고 있다.

최근에 벌어진 사태를 보면 일견 이질적인 것 가지만, 실상은 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수주 전 서울대에서는 학생들의 행정부서 점거 농성이 몇 주 있었고, 고려대에서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명예박사학위 수여식이 학생들의 시위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경찰과 검찰,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와 검찰, 공기업과 지자체 등 각종 국가 기관 간의 대립이 공공연하게 벌어지더니, 경기도지사가 총리 주재의 수도권 발전대책협의회 도중 회의장을 나오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집단들의 시위도 좀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교원평가제 공청회가 전교조 선생님들의 물리적 방해로 열리지 못하였고, 드디어는 고등학교 1학년생들이 현 입학제도의 문제를 지적하며 더 이상 시험 준비에 억눌릴 수 없다며 광화문에서 촛불시위를 시도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대립과 시위는 정부정책관리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으로, 문제해결 역량과 더불어 정책문제 관리방식의 개선 없이는 해결이 요원한 문제이다.

많은 국민들은 참여정부의 문제해결능력에 대해서는 이미 실망의 수렁을 경험하였고 일부 386 자신들도 이를 인정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민주화를 이룬 세대라고 자처하는 386과 이들이 리더로 떠받치고 있는 지도자들은 국가발전능력면에서는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적어도 정책관리방식의 개선에라도 나서야 그들의 존재가치를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민주화 세력이 군사권위주의를 타도하고 새로운 참여의 시대를 연 공로에 대하여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국민은 없다.

그것은 시대의 대세였고 한국사회 발전의 수준을 높인 쾌거였다.

그런데 현재 정부가 겪고 있는 혼란을, 민주화에 전력하였고 참여시대를 연 권위를 인정받고자 하는 386이, 과거의 관행 때문이니 진정한 시대가치를 모른 데서 나오는 불만이니 하는 식으로 호도해서는 안 된다.

그들 앞에 가로놓인 그들이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로 인식하여야 한다.

그것은 민주화라는 것이 단순히 군사권위주의를 타도하고 민주정권을 주기적으로 탄생시키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남을 예우하는 '마음의 습속'(the habit of the heart)을 기르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질적이거나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 간의 이해를 조정하지 못하고, 자신들과 다른 정책적 견해를 가진 집단을 외면하거나, 설득할 역량을 갖추려고 하지 않는 집단을 진정한 민주주의의 신봉자라고 할 수 없다.

이들은 시대적 전기를 이용하여 정치권력을 획득한 정상배로 취급되지는 않을지라도, 표면적 정권교체만을 염두에 둔 제1차 민주집권세력이라고 폄하할 것이다.

21세기 초반 한국의 과제는 진정한 민주적 가치를 설득하여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까지도 공공성이라는 대의명분 앞에 자신의 주장을 바꾸게 하는 '제2의 민주화'를 이룩하는 것이다.

이것은 의견이 다른 사람의 견해도 경청하며, 자신의 입장을 수차례 숙고하고 조정하는 성찰(deliberation)의 과정 속에서 가능해진다.

현재 한국의 집권층이 가장 비판을 받고 있는 소위 코드(code)라는 것이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하거나 20세기 피상적 민주화에만 매달리는 단견에서 비롯되지 않은가 하는 우려가 지워지지 않는다.

역사의 약진을 믿는 진정한 진보라면 80, 90년대 보통시민이 바라던 제도적 민주주의에 머무르지 말고, 진정한 마음의 습속을 민주화하는 제2단계의 민주화로 선뜻 나서야 한다.

마음을 열고, 반대하는 집단의 가치와 이해까지 고려하는 논의과정을 만들고 그들과 대화하면서 정책과정을 민주화하는 노력을 경주하여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사회 제세력과 협력하여 국정을 관리하는 거버넌스(governance)를 구축하는 길이 열리고 요즘의 혼란과 대립이 줄어들 것이다. 이달곤 서울대 행정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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