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정의 달, 거리를 헤매는 노숙자들

"이꼴로는 집에 못돌아가요"

'우린들 왜 가족이 그립지 않겠습니까?'

가정의 달 5월. 거리를 떠도는 노숙자들은 손을 잡고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박모(40)씨는 국채보상기념공원 한쪽 나무그늘 아래 시커먼 가방을 베고 누워있었다.

사람을 경계하며 쉽사리 말을 꺼내지 않던 박씨는 취재진이 건넨 담배 한 갑을 받고서야 더듬더듬 말문을 열었다.

"99년 말 노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IMF를 맞아 공장이 부도나는 바람에 직장을 잃은 뒤 다시 일거리를 구하기는 어려웠어요. 괴로운 마음에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고 견디다 못한 아내는 집을 나가 버렸죠." 박씨는 지나가는 학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이젠 열세살, 열두살이 됐겠군요. 학용품 하나 내 손으로 사 주지 못했는데. 어린이날은 어떻게 보냈는지도 궁금하고, 아버지 없다고 설움 받는 건 아닌지…."

아이들은 김천에서 농사를 짓고 계신 부모님이 돌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술만 찾다 병을 얻은 초라한 몰골로 가족을 만날 수는 없다고 했다.

"카네이션을 달고 공원에 놀러나온 노인들을 보니 못난 장남 때문에 고생하시는 부모님 생각이 납디다.

이런 내 자신이 밉고 서글플 뿐이죠." 박씨는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운 뒤 머리맡에 놓인 소주를 병째 들이켜고는 돌아누워 버렸다.

그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이모(38)씨는 가족과 연락을 끊은 지 2년이 지났다.

"97년 아내가 임신한 상태로 뺑소니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어요. 괴로움을 잊을 겨를도 없이 IMF가 닥쳐 일자리를 잃었죠. 한 번 꼬이기 시작한 인생은 계속 꼬이더군요. 얼마 안 되는 퇴직금으로 사업도 해봤지만 빚만 지고 떠돌이 신세가 됐습니다.

" 이씨에겐 과거를 떠올리는 일이 고통스럽다.

"이를 악물고 돈을 벌려고 2년 동안 조기잡이 배를 타기도 했습니다.

펜대만 굴리던 제겐 힘겨웠지만 그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미래가 없다는 절망감이었습니다.

"

이씨는 8남매 중 막내다.

다른 형제들이 73세 동갑내기인 노부모를 모시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아내가 죽었을 때도 가슴 아파하신 부모님인데…. 하지만 이 꼴로는 못 돌아가요."

대구시 복지행정과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쉼터에 머무는 노숙자가 185명, 쉼터를 수시로 드나드는 이들을 제외한 거리노숙자는 40여 명에 이른다.

대구 가톨릭근로자회관 노숙자쉼터에는 평균 40여 명이 머물고 있다.

이곳 김윤조 총무는 "IMF 직후 늘어난 노숙자들이 상당수 줄었지만 작년부터 다시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채정민기자 cwolf@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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