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가에서-소문의 벽-민주를 되새기며

5'18이 엊그제다. 역사의 암울한 채찍에 희생당한 분들에게 명복을 빈다. 1980년대 그 시절은 누구나 질곡의 삶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민주에 대한 강한 열망과 정의심에 가득 차 있던 대학생들에게는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오히려 향기로웠는지도 모른다.

이제 최루탄 냄새도 걷히고, 총칼에 무너져 내린 영혼을 달래는 장미 향내가 그 시절의 추억 위로 서리는데 가만히 '민주'를 다시 생각해본다. 이청준의 소설 '소문의 벽'에는 전짓불과 '진술 공포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두운 방에 있는 어머니와 아들에게 문 밖에서 갑자기 누군가 전짓불을 비춘다. 그리고선 곧 전짓불 뒤에 가려진 사람은 자신의 신분도 밝히지 않은 채 어머니에게 어느 편인지 대라고 다그친다. 한순간의 대답으로 목숨을 내놓아야 할 절체절명의 위기는 힘없는 한 자연인을 선택의 갈림길로 내몰았다.

이청준은 이런 소설적 장치로 이데올로기의 극단적인 대립이 어떻게 불행한 역사를 양산했는가를 고발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죽음을 담보로 한 편가르기의 역사는 소설 속의 이야기만 아니고 과거 우리의 삶 속에 일상화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제 빛바랜 사진처럼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라 믿었다. 왜냐하면 이미 민주는 보편적 가치로 우리의 내면 속에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회 한쪽에서는 민주라는 망령에 사로잡혀 힘들게 이룩한 민주를 악용하려는 부류들이 있는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기득권자들이며, 민주라는 단어만 선점한 채 속내는 전혀 민주적이이지 못한 사이비 민주꾼들일 것이다.

다원화, 다양화 되어가는 사회에서 나 아닌 남도 옳을 수 있다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한 때다. 자신의 주장이 옳지만 상대방의 주장도 옳을 수 있다는 생각이 민주의 기본이다. 가끔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자신의 이익만을 앞세운 폭력을 '민주'라는 이름으로 행사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럴 때마다 매캐한 최루탄 속에서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민주'를 외쳤던 수많은 열정들의 숯검댕이 심정을 가끔 손 위에 올려놓고 만지작거린다. '민주여,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노상래 영남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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