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 10월 12일. 콜럼버스가 최고로 화려한 의관을 갖추고 왕의 깃발을 단단히 치켜든 채 한 섬에 내려섰다. 콜럼버스는 엄숙한 표정으로 "주군들이신 왕과 여왕의 이름으로" 섬의 소유권을 선언하고 산살바도르라 명명한다. 이틀 뒤 원주민들을 징발한 콜럼버스는 "그들 모두를 복속시킬 수 있고 무슨 일이건 원하는 대로 부릴 수 있다"고 장담한다.
콜럼버스의 '오리엔털리즘'은 5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혼혈 혐오, 반유대주의, 인종주의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고 동양과 서양의 이항대립은 더욱 심화하는 추세다. 그리고 2001년 9'11테러와 이어지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그 정점을 보여준다.
'정복자의 시선'은 15세기 콜럼버스의 신대륙 정복의 궤적을 좇아가며 오늘의 세계를 바라본 책이다. 아메리카 발견에서 9'11테러까지 정복자들이 어떻게 피지배자를 '타자화'하고 있는지를 현지 취재를 통해 밀도 있게 보여준다.
이 책은 제1부 '혼합인'과 제2부 '콜럼버스와의 여행'으로 구성돼 있다. 시기적으로는 2부가 먼저 씌어졌다. 1991년 미국이 '사막의 폭풍' 작전으로 사담 후세인의 군대를 초토화시킬 당시 프랑스의 권위지 '르 몽드'의 중견기자 에드위 플레넬은 색다른 탐방 기사를 구상했다. 콜럼버스가 태어난 땅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출발, 스페인과 쿠바를 거쳐 아이티 섬, 멕시코 등 18개국으로 이어지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코스 답사. 그가 코앞의 전황을 뒤로 한 채 콜럼버스의 대서양 횡단 여행과 삶의 자취를 따라 나선 이유는 간단했다. '정복자의 시선'에 쏠리지 말고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자는 것. 서양의 동양에 대한, 혹은 주류의 비주류에 대한 일방적인 폄훼를 넘어서자는 의도였다.
그리고 2001년, 전 세계가 9'11테러의 충격에 빠지자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을 테러 책임자로 낙인찍고 또 한번 이라크 공격에 나섰다. 저자는 제1부 '혼합인'을 통해 10년 전의 여행을 반추하며 당시에 열린 듯이 여겨졌던 사유의 자취를 좇는다. 부시 부자의 전쟁을 두고 저자는 "우리 모두는 자신의 관행이 아닌 것을 야만이라고 부른다"는 몽테뉴의 금언을 끌어온다. '진보'와 '자유'를 빙자한 두 차례의 전쟁은 동양(야만)-서양(문명)이라는 오래된 서구의 편견을 반복, 재생산하는 '폭력'이자 '비이성'이다. 이러한 문명사적 위기는 단지 미국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2002년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파인 르펭이 급격히 부상했던 '르펭 현상'은 타자 억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기만적인 해결책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다는 극명한 예다.
그의 결론은 '타자에 대한 이해'는 물론, 나아가 적극적인 섞임을 추구하는 '혼혈'을 지향한다. 동서나 흑백같은 단순대립을 넘어 '타자를 어떻게 만날 것인가'라는 좀더 적극적이고 포괄적인 문제를 제시하는 것이다. "혼혈은 강자에 대한 약자의 전략이다. 승자 앞에서 살아남고 약자를 구제하는 생존과 구제의 한 방식"이라는 그의 발언은 보편적 인륜성을 회복하고 세계주의 휴머니즘에 가닿고자하는 그의 의지를 보여준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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