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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 20돌 맞는 '대구 생명의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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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생명의 전화(1588-9191)'가 내달 2일 개원 20주년을 맞는다. '생명의 전화'는 1년 365일, 24시간 쉬지 않고 시민들의 다양한 고통과 불안을 상담해왔다.

'대구 생명의 전화'가 갖는 생명력은 자원봉사자의 힘이다. 이곳은 1985년 문을 연 이래 2천619명의 상담봉사자를 배출했다. 현재 활동 중인 상담봉사자는 250여 명이며 20대에서 7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이석기(74·여·북구 복현동)씨는 상담봉사자들의 큰언니다. 봉사자들 중 두 번째로 나이가 많지만 일에 대한 열정만은 누구 못지 않다. 그는 1988년 교육을 받고 이듬해부터 상담 봉사를 해왔다. "내가 50대에 이 일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자원봉사의 개념이 생소할 때였죠. 이젠 경험이 쌓여 내 말이 전화를 걸어온 사람에게 도움을 줄 거라는 느낌이 와요." 그는 이 일을 막 시작했을 때 걸려온 한 젊은 여성의 전화를 잊지 못한다. "결혼한 지 1년도 안 돼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면서 마음 속의 고통을 호소해 왔죠. 나도 일하기 얼마 전 남편을 잃어 그분 말이 가슴에 와 닿았어요. 결국 둘이 전화통을 붙잡고 같이 울어버렸습니다."

이곳 상담원의 80%는 여성이다. 그들에게는 음란전화를 비롯해 성 상담 전화나 술 취한 사람들을 상대할 때가 곤혹스럽다. 이 때문에 젊은 여성들은 견디기 힘들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장난전화도 숙련된 상담원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고 알아서 끊어버린다.

강춘강(62·여·남구 대명동)씨는 "이곳에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일단 전화를 하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데 많은 위안을 받죠"라고 말한다. 그는 1건당 보통 25∼30분 정도 걸리는 상담을 통해 오히려 자신도 성숙해졌음을 느낀다.

상담원 1기 출신인 한외근(58) 상담소장에 따르면 이곳은 '상담원 사관학교'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곳에서 전화상담을 위해 만만치 않은 교육과정을 거쳐야 하고 교육을 수료한 뒤 다른 기관에서 상담 업무를 보는 이들이 많다.

"일단 만 24세가 넘어야 교육받을 자격이 주어집니다. 출결석 관리도 철저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 강의를 듣는 등 교육과정도 만만치 않죠. 교육을 받은 뒤에도 견습 3개월로 400시간 이상 상담을 한 뒤에야 상급반이 될 수 있습니다. 끈기가 없으면 버티기 어렵죠."

이곳에서는 전화를 걸어오는 이들과 상담봉사자들의 직접 대면을 금지하고 있다. 혹시나 발생할 수도 있는 상담봉사자들의 피해를 미리 방지하기 위함이다.

지난해 취임한 이재동(46) 원장은 전화를 들고 다니는 시대가 된 만큼 이곳의 일이 점점 더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상담원도 지속적인 훈련을 받은 자원봉사자이지 전문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전문가는 오히려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는 반면 이들은 나름의 일상생활을 하면서 이 일에서 활력을 찾으니 더 적극적으로 상담에 임하게 되죠. 앞으로는 자살 예방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겁니다."

지금까지 모두 20만여 건을 상담해왔다. 남녀, 부부 문제에 대한 상담이 각각 20% 정도로 가장 많고 가족 문제와 성 문제가 약 11%로 뒤를 잇고 있다. '대구 생명의 전화' 구성원들은 오늘도 '얼굴 없는 친구, 다정한 이웃'을 모토로 전화기 앞에 앉는다.

채정민기자 cwolf@imaeil.com

사진:어떤 고민이라도 귀를 기울여 주는 상대가 있다는 건 큰 위안이다. 오른쪽부터 이석기 상담사, 이경미 과장, 이재동 원장, 강춘강 상담사, 정수환 상담사, 한외근 소장, 임선영 상담사. 이상철기자 find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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