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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잃은 영경이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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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초등학교 4학년인 김영경입니다. 아빠는 있는데 지금은 집에 없어서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어요. 할머니는 하루에 동네를 몇 바퀴씩 돌고 박스, 종이, 캔, 플라스틱을 주워 팔아요. 이웃 어른들도 많이 도와줘서 하루에 한 8천원 정도는 벌 수 있대요. 새벽 2시에도 나가고, 저녁 밥 먹고도 나가고... 잠은 거의 안 자요. 할머니는 1년 전에 친구들이 신다가 버린 실내화를 주워 신었는데 아직도 신어요.

엄마는 4년 전에 하늘나라로 떠났어요. 11년 동안 백혈병을 안고 살다가 못 참아서 그랬대요. 늘 병원에 있었던 엄마는 내가 오는 걸 싫어해서 얼굴도 잘 모르겠어요. 기억도 안 나요. 얼른 나아서 같이 놀이공원 가자고 했는데 의리없이 혼자 높은 곳에 갔어요.

아빠는 그 때 엄마 돌보려고 병원으로 가다 차랑 부딪쳤는데 머리하고 눈을 다쳤어요. 한 쪽 눈이 실명했어요. 정신도 좀 이상해졌다고 할머니가 그랬어요. 그래선지 한 번 씩 집에 술 먹고 들어와서는 할머니를 때리고 모은 돈을 다 가져가요. 나도 때리고, 야단치고... 정신없이 잠들었다가 또 어디로 가고. 요즘 아빤 옛날 아빠가 아니예요. 나는 자기 딸인데 날 못 알아볼 정도로 엉망진창이예요.

할머니는 이빨이 다 썩고 상해서 틀니라도 해야하는데 돈이 없어요. 맨날 자기 전에 나를 꼭 안고 "우리 영경이, 할매 없으면 우째 살꼬? 우째 살꼬..."하면서 울어요. 할머니가 우니까 나도 자꾸 눈물이 나는데, 나까지 울면 할머니가 슬퍼할까봐 참아요.

어떤 아이와 싸웠어요. 엄마 없다고, 아빠가 주정뱅이고 할머니는 거지라고 놀려서 그랬어요. 그 때 이마쪽에 있는 머리카락이 다 뽑혔는데 이상하게 머리카락이 더이상 안 자라요. 할머니는 "지 애미하고 똑 같은 병 아니가?"하면서 절 병원에 데려갔는데 별로 이상은 없대요. 그냥 사람들이 '영양부족'이라고 말해요. 나는 할머니랑 살꺼예요. 어른되면 내가 돈 벌고 할머니 밥 해 줄 거예요. 그게 소원이예요."

이웃사랑 취재진이 찾아간 영경이(11)의 집은 서구 평리동 단독주택의 다 쓰러질 듯한 방 한칸이었다. 온갖 잡동사니가 쌓인 방 한켠엔 동사무소에서 가져다 준 부식이 풀지도 않은 채 쌓여있었다. 방은 어른 하나 누우면 딱 맞을 정도로 비좁았다. 영경이는 아침에 차갑게 식은 동그랑땡에 밥 한 숱갈 퍼먹고 학교로 간다. 철부지 영경이의 밝은 웃음이 오히려 안쓰러웠다.

그림을 잘 그리는 영경이는 스케치북에 온 통 사람 얼굴을 그려놨다. 사람이 그립다. 그림 위에 덧칠하고 또 그리고... 스케치북 살 돈이 없단다. 일기장에도 온통 '아껴쓰자' '절약하자'라는 글 뿐이었다. '할머니한테 받은 오백원 조금씩 은행에 주면 부자될 수 있다'는 글귀도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이지만 아빠가 있기 때문에 20여만원 밖에 받지 못한다. 꾹 눌러쓴 영경이의 모자를 벗겨보니 정말 그 부분만 빡빡머리였다. 아픈 데는 없다지만 뭔가 이상했다. 병원에 보내고 싶다.

언제 집으로 들어올 지 모르는 아빠가 겁나는 영경이. 새벽녁 손녀의 품을 빠져나간 할머니를 울면서 찾는 영경이. 낮에는 '의사'가 되고 주말에는 '주방장'이 돼 못 사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며 밝게 웃는 그 아이가 자꾸 눈에 밟힌다. 저희 '이웃사랑' 제작팀 계좌번호는 대구은행 069-05-024143-008 (주)매일신문입니다.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사진 : 할머니와 영경이는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 이상철기자 find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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