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경북 경계인-(1)'대구 위장전입' 필수

대구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고통은? 단연 자녀 교육이다. 지난 주 취재 기간에 만난 사람 상당수는 '자녀 교육' 때문에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기러기 아빠', '출퇴근 농사'를 마다하지 않고 있고, 자녀들을 대구에 '유학' 보내고 있다.

◇경산

지난 2일 대구와 맞닿은 곳인 경산시 중산동에서 만난 주부 김정옥씨는 저녁 무렵 대구 시지 학원가에서 교복을 입고 다니는 학생 중 상당수는 집이 경산이라고 전했다.

"시지에서 학교수업을 마친 뒤 경산에 있는 집에 와 사복으로 갈아 입고, 다시 시지의 학원에 갈 시간이 없잖아요. 그래서 학교 수업 뒤 바로 학원으로 달려가고, 학원수업을 마친 뒤에야 밤에 경산의 집으로 오고 있어요."

같은 날 밤 11시. 대구 수성구의 모 고등학교 앞. 야간학습을 마친 자녀들을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몰려든 부모들의 차들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이들 차 중 경북지역의 번호판을 단 차들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

이날 만난 김모(48)씨는 집이 경산 중산동의 한 아파트라고 했다. 경산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씨는 생업에 지장이 있지만 그래도 아이 교육을 위한 지원이 우선이라고 했고, 주변에 비슷한 처지의 경산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김씨는 지난 10년간 고 3인 큰 아이의 초·중·고 진학 때마다 위장 전입을 해야 했고, 위장 전입이 들통 나 마음고생도 컸다.

"살고 있는 아파트 통로의 36가구 중 절반 이상이 자녀들을 대구의 학교에 보내고 있습니다. 원룸이나 주택의 방을 세내 아이의 주소를 옮긴 뒤 책상과 옷가지만 남기곤 아이는 경산 집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죠. 거의가 초등학교 때부터 대구 '조기유학'을 시작한 것으로 보면 됩니다."

경산교육청의 경산시내(읍·면 제외) 11개 초등학생 전·출입 현황에 따르면 2003년부터 올 현재까지 전입은 2천917명인 반면 전출은 4천771명으로 1천854명이나 더 많다.

연도별로는 2002년 1천381명, 2003년 1천523명, 2004년 1천257명, 올 현재 610명이며 각각 550명, 640명, 347명, 317명이 더 빠져 나갔다. 특히 올해의 경우 전출이 전입(293명)의 배가 넘었다.

전출 학생들은 상당수가 대구로 갔다. 이 기간 전체 전출 학생 중 대구로 간 학생이 2천787명으로 58.4%나 차지했다. 또 전출 학생들은 저학년 때보다 고학년 때 대거 대구 등지로 빠져나가고 있다. 올해의 경우 1학년 전출 학생이 24명에 불과한 반면 4학년은 122명, 5학년은 121명, 6학년은 104명이 전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 등지의 전출 현상은 취학전, 중학교에까지 두드러지는 추세다.경산시(읍·면 포함) 연도별 취학대상 아동 수는 2000년 3천300명, 2001년 3천371명을 정점으로 2002년 2천927명, 2003년 2천628명, 2004년 2천55명 등 갈수록 줄고 있다.

또 2004년 12개 공·사립중학교 전·출입 현황의 경우 전입(222명)보다는 전출(262명)이 많았고, 전출 지역도 대구 123명으로 47.0%를 차지했다.

교육청 한 관계자는 "경산의 개발 붐으로 학교는 느는데도 학생은 그렇지 못하다. 이러다간 텅빈 교실만 남을까 걱정"이라며 "지역 내 사립 명문고를 하루 빨리 육성, 학생들의 대구 전출 러시를 막아야 한다"고 했다.

◇칠곡

문근배(44)씨는 벌써 11년째 '기러기 아빠'로 살고 있다. 대구 북구와의 경계, 칠곡 동명면에서 나고 자란 문씨는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쯤 대구 칠곡에 아파트를 장만했다.

동명면의 중·고교는 하나뿐이고 대구는 물론 칠곡군 내 타 학교와도 학력 차이가 커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려면 '대구'로 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 특히 대구 칠곡과 동명면은 경계조차 없는 단일 생활권이라 자녀들의 대구 주소 이전은 하나의 통과의례나 다름없다는 것.

하지만 '이중 살림'은 면민들에게 말 못할 고충을 안기고 있었다. 당장 팔공산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문씨는 대구까지의 출퇴근이 어려워 가게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는 처지다. '아내'도 대구와 팔공산을 오가며 남편과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느라 녹초가 되기 일쑤다.

생활비도 만만찮아 차 기름값이 배로 들고, 칠곡과 대구에 세금을 이중으로 내야 한다는 것. 문씨는 "초·중·고 자녀를 둔 동명면 주민들은 모두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며 "대구에 집을 장만하지 못하면 '위장전입'이라도 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취재팀이 만난 한 학부모는 "자녀 교육을 위해 마련한 대구 대현동 25평형 아파트에 모두 5가구가 위장 전입해 있다"고 했다. 게다가 대구에 집을 마련하면 친구나 친지들의 위장 전입 '청탁'이 봇물을 이룬다는 것.

위장전입 부모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자녀 통학문제. 바로 옆이 대구지만 통학 버스 하나 없기 때문. 대구로 들어가는 버스는 한 대뿐이며 이마저도 하루 9회만 운행해 등하교 땐 아예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24시간 국밥집을 운영하는 유만근(48·동명면 기성리)씨는 "자녀들을 새벽 일찍 대구의 버스정류장에 데려다 주고 밤늦게 태워 오는 일을 10년 넘게 계속해 오고 있다"고 했다.

동명면민들의 자녀 주소 이전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은 지역 초등학교. 4학년부터 대구 주소 이전이 시작돼 4·5학년은 통합반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 동명면 2개 초등학교는 한때 1천 명이 넘었지만 지금은 100~200명 안팎으로 줄었고 지난해 6학년 졸업생은 모두 10명 미만이다.

동명면 상주인구는 1만 명이 넘지만 주민등록 인구는 6천500명에 불과하며 자녀교육 때문에 대구로 주소를 옮기는 것에서 비롯되고 있다. 김종선 칠곡 군의원은 "경북과 대구 교육청이 동명면과 대구 북구의 학군 통합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이종규·이상준기자 대구권팀 이홍섭·강병서·김진만·정창구·이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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